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스쳐간 사람들, 그렇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얼굴들

by 윤샹

첫 배낭여행은 100일을 떠돌며 16개국 31개 도시를 다녀왔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오늘은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너무도 활력적인 커플 : 원 오빠와 신 언니

이 둘은 첫 만남부터가 너무 강렬해서 이야기를 안 꺼낼 수가 없을 것 같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카우치서핑 첫날. 갑자기 호스트가 우리 외에도 또다른 한국인 커플이 함께 묵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당시 이 집에는 나와 내 사촌동생, 몽골에서 동행한 한국인 오빠 셋이 이미 묵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워낙 카우치서핑을 구하기 힘들었기에 한국인 다섯 명이 한 집에 모인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놀라웠다.


모스크바에서의 우리


곧이어 더 큰 놀라움이 펼쳐졌는데 그 둘은 자전거에 텐트며 갖가지 짐을 다 바리바리 싸들고 도착했다. 오빠가 세계일주를 8년째 하는 중이었고(무려 자전거를 타고) 언니는 그런 오빠를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 한국에서 자전거를 사들고 쫒아 나왔더랬다.... 이 둘의 엄청난 여행기와 사랑(?)에 놀라웠던 우리는 언니 오빠에게 푹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이어졌다.


그들의 일상이 담긴 자전거


자전거로 여행하다 밤이 깊으면 길가에 텐트를 치고 바로 잠을 청했다는 생생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찌 신이 나지 않으랴. 모스크바에서의 짧은 만남이 아쉬웠던 나에게 그들은 이틀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봐!"를 외치며 가벼운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이틀 뒤, 내가 열차를 타고 반나절만에 넘어가 있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언니 오빠가 도착했다. 자전거로 열심히 달려서. 그렇게 우리는 만나서 자신의 여행기를 풀어놓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장을 봐 요리를 해먹으며 그렇게 우리만의 성실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처음 본 사람과도 이렇게 친해질 수가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친밀감이 쌓였다.


슈퍼에서 본 장으로 차린 우리의 푸짐한 한끼


언니 오빠를 보며 여행이 굳이 화려하고 넉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꼈다. 하루하루를 좋은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며 같이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계속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어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이런 것이라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 그들의 활력은 스스로 책임지는 자신의 행복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비보르크와 핀란드, 스웨덴까지 이어졌던 우리의 여정. 마지막이라고 우는 나에게 오빠는 진짜 인연은 만들어가는 거라고 보고 싶으면 한국에서 또 보면 되는 거라고 아쉬워서 우는 것은 또 볼 생각이 없기 때문인 거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게 우린 정말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놓칠 수 있으랴.




동갑내기 두 친구 : 김과 조

여행을 하면서 동갑내기 친구를 둘 만났다. 둘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아주 다른 둘이었다. 이 둘은 공교롭게도 독일의 각각 다른 두 도시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 명은 카우치서핑 호스트였고 한 명은 동행이었다.


김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면, 김은 독일에서 이미 여행가이드로서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며 살아가는 친구였다. 같은 나이에 차를 멋지게 몰고 자신의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는 그 친구가 너무도 멋지게 보였다.


아우토반을 달리던 김의 차


여행을 하며 떠돌다보니 누군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독립적이고 외로움이 없는 사람이 참 부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단 맘보다도 그냥 그런 단단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친구를 동경했다.


조와의 유쾌한 베를린 여행


조는 반대로 나처럼 떠돌며 여행을 하고 있는 친구였다. 야망이 참 큰 친구였는데 여행에서 배운 것과 여행 이력을 활용하여 한국으로 돌아가 이력서에 멋진 한 줄을 적고자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친구의 쾌활함과 다정함이 좋아 함께 동행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같은 나이이지만 정말 천차만별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여행이 주는 자유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기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마주할 현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렇게 그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한채 멀어졌다.


동갑내기라는 포지션은 사람에게 오묘한 비교를 준다. 나와 그 친구의 삶을 번갈아보며 내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지금은 해외에서 주변에 동갑내기를 거의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을까?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이제는 동갑내기 안에서의 비교를 넘어선 것 같다.




프랑스 안시에서 만난 호스트 : 쿨내날 줄 알았던 유럽 사람들

여행을 마치고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어디가 제일 좋았어?"이다. 기준이 수도 없이 많아 아주 많은 대답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중 빠지지 않고 나왔던 곳은 프랑스, 안시이다. 프랑스 안시는 프랑스 사람들이 은퇴하고 살고 싶은 도시 1위라고 한다. 우연찮게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다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찾은 곳이 안시라 안시에 묵게 됐다. 전날 블라블라카를 잘 못 예약하여 듣도 보도 못한 프랑스의 시골마을 알베르빌에서 묵으며 감정의 기복한 터라 다음 날 아침 안개낀 안시호를 따라 도착한 안시는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도착한 다음 날 눈부셨던 안시호


마침 아델의 헬로가 발매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고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중저음의 아델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착한 이곳은 천국이었다.


아기자기한 그녀의 딸 방


프랑스 안시의 호스트집은 스웨덴의 이케아를 옮겨 놓은 것처럼 알록달록하고 아름다웠다. 출판사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아직 꼬꼬마로 보이는 딸의 방을 내게 내주었고 자신의 딸은 지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고 알려줬다.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이혼 가정의 자녀로 자란 나는 그녀의 일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서양 사람에겐 이혼이 별거 아닌 자잘한 일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내가 흔히 보던 미드에서 서양사람들은 늘 쿨내가 진동했으니까.


그렇게 예쁜 방과 아름다운 도시에 감탄하며 하루를 보내고 들어온 내게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호스트가 거실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울고 있는게 아닌가. 놀란 나는 당장 그녀 곁에 앉았고 우리는 저녁 식사를 펼쳐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이혼하여 전남편이 키우고 있는 아기가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아 아이를 데려오지 못했고 물론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를 볼 수 있지만 너무 그립다고. 오늘도 저멀리 걸어가는 전남편과 아이를 보았는데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뭔가 쿨내나게 이혼했어도 아무렇지 않게 전남편과 친구로 지내는 사람일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녀의 말은 너무도 생소하게 들렸다. 그녀도 사람이구나. 서양 사람들도 우리처럼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었어.


그녀와의 저녁과 깊은 대화


그날 저녁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그녀와 깊은 감정적 교류를 나눴다. 그 전까지 호스트들과도 잘 지냈지만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는 처음이었다. 외국인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장벽이 있다 생각하던 나의 편견을 송두리채 뽑아버린 저녁이었다.


유쾌한 크리스마켓의 사람들


눈을 뜰 때마다 도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던 나의 호스트, 이혼해서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가 너무 그립다고 했던 나의 호스트. 그녀의 말을 통해 외국인이 더이상 외국인이 아닐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 깨부신 편견 덕에 나의 남편이 외국인이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국적에 감정이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꼭 인생의 반려를 데려오리라 다짐했던 2015년의 벤치
퐁 데 자무르 : 혼자라도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프랑스의 연인의 다리, 당시엔 이런 다리인지 몰랐다....


이때 이 도시가 너무 감정적으로 울림이 있었어서 안시호 앞 벤치에 앉아 외로움을 호소하던 나는 나중에 내가 인생을 함께하고 싶은 반려가 생기면 이곳에 꼭 그 사람을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딱 9년이 지난 2024년 겨울 나는 현재의 나의 반려와 함께 안시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반려와 안시에서 해먹은 요리들


역시 좋은 여행은 사람을 남긴다.


스윗 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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