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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 벽을 사이에 두고

옆집 남자들

테라스 오피스텔에 살다보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넘을 수 있는 벽을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아주 간접적으로 옆집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특히나 나는 테라스에 있는 시간이 많기에 옆집 사람들이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왔다가 문을 닫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을 엿듣기도 한다.


먼저 왼쪽 집은 내 또래같아 보이는 젊은 남자가 산다. 예전에 집을 나설 때 딱 한 번 마주쳤다. 그런데 매우 조용하다. 내 집에 있다보면 다른 집에서 들리는 큰 소음을 들리기 마련인데 왼쪽 집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테라스에서도 마찬가지.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부동산 중개사분이 테라스가 좋아서 이곳에 이사와도 정작 테라스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딱 맞는 것 같다. 조용하니 서로 피해줄 일 없어서 좋긴 하다.


두 번째로 오른쪽 집도 젊은 남자가 산다. 이분은 특징이 굉장히 많다. 문 앞에서 마주친 건 딱 한 번. 일단 이분의 가장 큰 특징이자 내가 정말 괴로워하는 부분은 담배를 핀다. 테라스에서는 금연이다. 따로 담배를 피우는 곳이 층마다 있지만, 그 사람들도 귀찮은지 자신의 테라스에서 피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종종 테라스에서 담배 피지 말라고 안내 방송이 나오기도 한다. 아마 나같은 사람이 민원을 넣은 거겠지. 암튼 테라스에 앉아있다보면 오른쪽 집 남자가 벌컥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온다. 그러곤 뚜벅뚜벅 걸어서 난간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운다. 그러면 나는 슬며시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집에 있다보면 담배를 다 피운 남자가 집에 들어왔다는 신호로 테라스 문을 아주 “쾅!!”하고 닫는다. 힘이 남아도는 것 같다. 스모킹맨이 들어온 후에 나는 다시 테라스로 나간다.


이 스모킹맨과 나의 비슷한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테라스에서 낭만을 조금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나는 테라스에 천막이 있고, 스모킹맨은 테라스에 파라솔이 있다. 우리를 사이로 둔 벽을 넘어서 파라솔의 끝부분이 삐죽 튀어나와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놀러오면 파라솔이 펴져 있고,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왠지 그런 소음은 전혀 시끄럽지가 않다. 아주 프라이버시한 캠핑장에 온 기분이랄까? 캠핑장에서 옆 텐트가 고기구워먹고 이야기하면서 논다고 뭐라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스모킹맨의 가장 큰 장점이 하나 있다. 가끔 친구들이 놀러오면 집에 있어도 옆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장난치는 소리가 웅웅 들리는데, 밤 10시가 되면 소리소문없이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연이가?’했는데 늘 그래왔고, 나는 이 집에 살면서 주변에 다 혼자 사는 젊은 사람들이지만 밤에 시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내가 예민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무튼 그래서 감사하다. 그런 예의를 지킨다는 것이. 담배는 아니지만,,


요즘 예스24에서 서평단신청을 해서 받은 책을 읽고 있다. 바로 올해 3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낸시 슬로님 애러니 작가의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이다. 이 작가는 정말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해왔으면 절망 가운데서도 기록으로 인해 치유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 작가의 아주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읽는데 나도 당장 지금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나게 읽던 책을 잠시 덮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지금 사는 공간이 너무 좋고 사랑하지만 내년에면 이곳을 떠나 또 새로운 곳에 간다. 아마 이곳에서의 추억을 두고 두고 되새기며 꺼내볼 것 같은데, 그저 ‘좋았다.’라는 단순한 감정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내가 왜 가게 되었고, 어떤 점이 좋았으며, 또 어떤 점은 좋지 않았고, 어떤 재밌는 일이 있었고,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떤 생각들을 해왔는지 자세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혹시 모르지 않나. 쌓아놓은 글들이 한 권의 귀여운 책이 될지.


이 책에서 말하듯이 주머니 하나에는 ‘내가 세상이다’라고 쓴 쪽지를 넣어두고, 다른 주머니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쓴 쪽지를 넣어두며, 두 쪽지 모두 보면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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