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진심과 KPI 사이에서
처음엔 진심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었고
한 사람의 삶에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지금은 다르다.
기획서의 시작은 턱없이 부족한 KPI를
열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누군가의 변화보다는 부서 내 숫자 채우기
전환율, 이탈률, 열람률, 응답률…
그 숫자들을 바라보며, 머릿속 계산기를 먼저 두드린다.
기획의 첫 문장이 ‘진심’이 아니라
‘성과 예상치’가 되어버린 지도 꽤 오래다.
보고서에는 늘 두 가지 열이 있다.
왼쪽엔 내가 쓴 말들,
오른쪽엔 그 말이 얼마나 ‘효과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숫자들.
그 사이 어디쯤에
내 마음도 끼어 있긴 한데
점점 희미해진다.
나는 분명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고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결제를 먼저 두드리고 있다.
후원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도,
기억에 남게 만드는 것도
점점 더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정밀하게…
그렇게 내 말들은 차가워졌고
기획서는 점점 촘촘해졌지만
어딘가 공허하다.
그 문장에,
내 마음이 없다는 걸
나만 안다.
어느 날 밤늦게,
기획서를 저장하려다
문득 메모 하나가 눈에 걸렸다.
"이 캠페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내가 쓴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질문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내가 믿었던 진심이
성과 예측표 속 어딘가에 갇혀 있다.
그 메모가 기억에 오래 남는 걸 보면,
진심은 숫자보다 오래 가는 모양이다.
지표엔 남지 않지만, 마음엔 남는 말.
그런 문장을,
나도 다시 쓰고 싶다.
우리는 왜 ‘기획’을 하는가
타이틀보다 더 중요한,
타인의 마음에 닿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