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방법과 돌아가고 싶은 마음
“엄마… 나는 왜 태어났을까?”
“수리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머리카락 색깔도 이상하고… 마법도 잘 못 쓰잖아. 다른 애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맨날 실패해.”
“…”
“오늘도 주문이 거꾸로 나가서… 마법 대신 연기만 나왔어. 친구들은 그것밖에 못하냐고 나를 비웃고, 놀렸어...”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팠구나.”
“이런 내가 너무 싫어.”
“수리야, 엄마 눈을 봐줄래?”
“…응.”
“엄마는 네 머리카락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은빛, 그거 처음 봤을 때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이상해서 놀란 거 아니야?”
“아니. 너무 특별해서.”
“특별한 게 아니라 이상한 거겠지.”
“수리야.”
“응…”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건, 틀렸다는 뜻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마법도 못 쓰잖아. 마법을 못 쓰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의미 없잖아.”
“누가 그렇게 말했어?”
“다들 잘하니까… 나만 뒤처진 것 같아.”
“잘하는 게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야.”
“그래도 나는 잘하는 게 없는데…”
“있어. 너는 포기하지 않고, 뭐든지 열심히 하잖아.”
“그건… 그냥 포기하면 내 자신이 더 싫어질까 봐…”
“그게 용기야, 수리야.”
“용기…?”
“넘어져도 다시 해보는 마음.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마법이지.”
“그게… 마법이야?”
“응. 엄마가 본 마법 중에 제일 빛나는 마법이야.”
“나는 빛나지 않는 것 같은데…”
“엄마는 네가 실패하고 울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그 순간이 제일 빛나 보였어.”
“정말?”
“응. 은빛 머리보다 더 반짝였어.”
“…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좋았어?”
“그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지 않아도?”
“응.”
“머리카락이 남들과 달라도?”
“응.”
“마법을 못해도?”
“응.”
“왜?”
“너는 하나뿐인 내 딸이니까.”
“… 정말로 나는 쓸모 있는 거야?”
“수리야.”
“응…”
“사람은 쓸모로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야.”
“…그럼?”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거야.”
“아무것도 못해도?”
“아무것도 못하는 날에도.”
“실수만 하는 날에도?”
“그날은 더 안아줘야 하는 날이지.”
“… 나를?”
“응. 남들이 뭐라고 하든, 네가 먼저 너를 밀어내면 안 돼.”
“근데 나는 내가 싫어.”
“그럴 수 있어. 가끔은 자기 자신이 제일 낯설고 미워질 때도 있지.”
“그럼 어떡해?”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해줘.”
“뭐라고?”
“‘그래도 괜찮아’라고.”
“… 괜찮아?”
“응. ‘서툴러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지금의 나도 괜찮아.’”
“… 그게 가능해?”
“연습하면 돼.”
“마법처럼?”
“응. 마음의 마법이니까.”
“… 엄마.”
“응, 수리야.”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이 좀 싫어.”
“그래도 괜찮아.”
“…그럼 나 조금만 더 해볼까?”
“마법?”
“응. 이번에는 잘하려고가 아니라… 그냥 나로서 해볼래.”
“그래. 잘하든 못하든, 넌 변하지 않아.”
“뭐가?”
“엄마의 딸이라는 거.”
“… 엄마.”
“응.”
“나… 그냥 나로 있어볼게.”
그 말에 여자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끌어안았다.
...
같이 사는 일상에 적응하고 있는 어느 날 건혁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었고, 수리는 창가에 앉아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수리는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신호등이 왜 저렇게 느리냐며 한 마디쯤 했을 텐데, 오늘은 조용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수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인간계랑 마법계 사이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 있어요. 그곳은 경계 같은 곳이죠.”
수리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선을 그렸다.
“예전에 스승님께서 그러셨어요.
저처럼 가끔 길을 잃은 마법사들이 머무는 곳이 있다고.”
"아니, 수리씨처럼 인간계로 떨어진 마법사가 또 있다고요?"
건혁의 말을 들은 수리는 건혁을 잠시 째려봤다.
“서점이에요.”
“… 서점?”
“네. 아주 오래된 고서점. 제가 전에 도시를 돌아다녔을 때 마력이 느껴졌거든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건혁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런 데가 진짜 있다고요?”
“있어요.”
수리는 진지했다.
“어쩌면… 거기서
제가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도 있어요.”
그 말에 건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점은 수리에 말대로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번화가에서 몇 골목 벗어난 곳,
간판 글자는 거의 지워져 있었고,
문 위에는 ‘서림당’이라는 이름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여기 맞아요.”
수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스페이티움, 루멘 패스"
수리가 주문을 외우자 갑자기 빛이 나며 서점의 문이 열렸다.
묘한 냄새가 풍겼다.
종이 냄새와 먼지,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공기.
“와…”
건혁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안에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책장은 천장까지 이어졌고,
책들은 규칙 없이 꽂혀 있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건혁이 속삭였다.
“조용한데… 시끄러운 느낌.”
“무슨 말이에요.”
“책들이 다 말하고 있어요.”
건혁은 대답 대신 책 한 권을 꺼냈다.
표지에는 제목도, 저자도 없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림이 움직인 것 같았다.
“… 착각인가.”
“아니에요.”
수리가 말했다.
“이건 마법책이에요. 저희 세계의 책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거든요.”
수리는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낡은 마법서, 반쯤 찢어진 주문집,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
“없네…”
“뭐가요?”
“귀환에 관한 기록.”
수리는 고개를 떨궜다.
그때, 카운터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는 책이 있나요?"
건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까까지 아무도 없었던 자리였다.
회색 머리의 노인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게 서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에 건혁은 회색노인을 보며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경계의 책 무경(無境)은.”
노인은 건혁과 수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수리는 숨을 삼켰다.
“그럼”
“아직은 아니야.”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아직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네가 인간계에 온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이 세상에 우연은 없는 법이지.”
그 말과 동시에,
서점 안의 불빛이 한 번 깜빡였다.
“가요.”
수리가 건혁의 소매를 잡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밖으로 나오자,
서점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조용했다.
건혁은 뒤를 돌아봤지만,
그 자리에 있던 건
평범한 벽뿐이었다.
"대체 제가 해야 되는 일이 무엇일까요?"
수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해답을 찾는 게 가장 싫은데.”
그리고 덧붙였다.
“돌아갈 방법을 찾는 거랑,
돌아가고 싶은 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이,
건혁의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았다.
"수리씨 제가 꼭 수리씨를 도와줄게요."
수리는 건혁의 말을 듣고 웃었다.
수리와 건혁이 나란히 걸었다.
그 모습을 회색노인이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건혁과 수리는 몰랐다.
서림당에서 돌아온 뒤, 햇빛이 밝게 드리운 어느 낮,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건혁은 커피를 내리고 있었고, 수리는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주변을 보니 최근 서림당에서 갖고 온 마법책이 가득했다.
'수리 씨가 마법계로 돌아가면 많이 쓸쓸할 것 같은데...'
수리는 소파에서 일어나 tv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정말 신기해요. 마법 스위치에 원하는 숫자를 누를 때마다 그림이 바뀌어요.”
건혁은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는 수리의 모습을 보며 대답대신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건혁의 손이 멈췄다.
“누구지… 택배는 어제 다 왔는데.”
아침부터 찾아올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건혁이 현관으로 향하는 사이,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렸다.
딩동—
그리고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