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무슨 말이든 길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말을 꺼내도 늘 짧게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앞에서는 늘 밝았다.
억지로 웃는 건 아니었지만
어딘가 조금 더 크게 웃었고,
조금 더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성인이 된 후 그 이유를 알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집 안의 공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아버지가 일부러 더 밝아졌다는 걸.
아버지는 말수는 적었지만 내 그림 앞에만 서면 달라졌다.
“이 선, 살아 있네.”
연필로 긋고 지운 자리까지도
아버지는 오래 들여다봤다.
종이가 눌린 자국을 손끝으로 짚으며 말했다.
“여기 망설였지?”
“티 나요?”
“응. 난 다 보이지. 근데 그런 점이 더 좋아.”
아버지는 웃었다.
“망설였다는 건 대충 안 했다는 거야.
진짜로 고민했다는 뜻이고.
그만큼 진심이 담겼으니, 그 선은 죽은 게 아니야.”
그 말이 좋았다.
나는 늘 내가 부족해서 흔들린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그 흔들림을 살아 있음이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더 그릴 수 있었다.
실수해도 괜찮았다.
아버지가 먼저 알아봐 줄 테니까.
아버지는 내 그림을 가장 먼저 봐준 사람이었다.
상을 받으면 누구보다 크게 기뻐했고,
힘들 때면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넌 할 수 있어.”
그 확신과 믿음 내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미대에 입학하고
교수님 추천으로 나간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작은 전시였지만
처음으로 내 이름이 벽에 걸린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평소보다 더 오래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이번 전시회 끝나면,”
아버지가 말했다.
“네 작품 모아서 전시 한 번 제대로 열어보자.”
나는 웃었다.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는 거 아니에요?
저 아직 멀었어요.”
“멀긴.”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하늘에 계신 엄마가 보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네 그림 보면 알아. 네 그림을 살아있거든.”
그 말이 내 그림에 관한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다.
전시 당일.
나는 하루 종일 입구를 봤다.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 아버지, 꼭 와야 해요.
— 알았다. 제일 앞자리에서 볼게.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전시는 시작됐고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선이 살아 있네요.”
“색감이 참 좋네요.”
그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 자리는 비어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전시회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저녁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바람을 쐬고 있었는데 건너편 횡단보도에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건혁아, 미안하다. 회사 일 때문에 좀 늦었다.”
아버지는 전화를 끊으며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끼이익 쾅!!!!!!
철그럭... 철그럭...
짧은소리. 짧은 공백.
눈앞의 장면이 믿기지가 않았다.
횡단보도는 피로 물들었고, 사람들은 뛰어갔다.
누군가는 나를 붙잡았다.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버지가 분명 몇 초 전까지 웃고 있었는데.
달려오는 트럭에 그 웃음이 끊어졌고, 영영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인데 그날 아버지를 친 트럭운전사는 음주운전을 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날 병원 복도에서
나는 아버지의 가방을 건네받았다.
가방 안에는 전시 팸플릿이 있었다.
구겨진 모서리.
내 이름 아래 동그라미.
그리고 볼펜으로 적힌 작은 글씨.
‘나의 자랑’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무언가 안에서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는 정말로, 기쁜 얼굴로
나를 보러 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러...
나 때문에...
사람들은 말했다.
“건혁 씨 잘못 아니에요.”
“사고예요.”
“운전자가 문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그 말은 힘을 잃고, 점점 사라졌다.
남는 건 하나였다.
내가 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내가 전시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그 시간에
그 교차로에 서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머리는 안다.
그게 억지라는 걸.
하지만 마음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림을 그리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힘들 때마다 늘 그랬으니까.
연필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선을 하나 그었다.
그 선이
이상하게도
횡단보도처럼 보였다.
흰 바탕 위에
검은 직선.
그 위를 건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숨이 막혔다.
연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번도 선을 끝까지 그리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
누군가 나를 부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네 그림은 살아있어.”
그 말이 이제는 다르게 들렸다.
내 그림이 사람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어디로 이어질지
나는 모른다.
그 무지가 무서웠다.
또 누군가
나를 보러 오다가
어딘가에서 멈춰 서면 어쩌지.
또 누군가
내 그림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다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그래서 나는
그리지 않았다.
재능이 사라진 게 아니다.
꿈이 싫어진 것도 아니다.
그냥 두려웠다.
그림이
누군가의 발걸음이 되는 게.
그리고 그 발걸음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봐.
...
테이블 위의 공모전 안내서.
“당신만의 세계를 그려주세요.”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내 세계는 이미 무너졌다.
그 교차로에 멈춰 있다.
아버지가 건너지 못한 곳.
아니,
내가 아직 건너지 못한 곳.
스케치북을 꺼냈다.
표지를 넘기려다 멈췄다.
아버지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선, 살아 있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살아 있는 건 선이 아니다.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는
죄책감이다.
나는 지금도
그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신호는 이미 바뀌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연필도 쥐지 못한다.
그게
내가 그림을 그만둔 이유다.
아버지를 잃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잃은 그 순간이
내 그림과 연결되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아직 그 연결을 끊어내지 못했다.
자책하고 있던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미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 저 때문에 깨셨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후회했다.
괜히 또 나 때문이라는 말을 붙였다.
수리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 숨 고르는 소리만 들렸다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시끄러웠을 텐데요.”
대답이 없었다.
정적이 길어졌다.
나는 여전히 떨리는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필을 잡지도 못하면서,
괜히 손가락 끝만 구부렸다 폈다 반복했다.
그때, 시야 아래로 그림자가 내려왔다.
수리씨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놀라서 올려다봤지만,
수리씨는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위로하는 얼굴도,
안타까워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냥 잡고 있었다.
내 손이 얼마나 떨리는지 다 느껴질 텐데.
수리씨는 손을 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
몇 초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심장이 조금 느려졌다.
손의 떨림도
아주 미세하게,
줄어들었다.
수리씨는 그제야 다른 손을 뻗었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안내서를 집어 들었다.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펼쳤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이거.”
짧게 말했다.
나는 시선을 옮겼다.
미술 공모전 안내서.
아까까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덮어버린 그 종이.
수리씨는 잠시 그걸 보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미술 공모전 나가보시는 게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