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쫓아오는 골목

울지 않으려 했던 마법사

by 따심토

연필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건혁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그림은 점점 형태를 갖췄고,
면들은 빼곡히 종이를 채워 나갔지만
그런데도.
“… 아니야.”
건혁은 연필을 내려놓았다.
고개를 기울여 다시 보고,
종이를 조금 멀리 두고 다시 보았지만
무언가가 비어 있었다.
따뜻함.
아버지가 말하던 그 감각.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선.
그게 없었다.
“왜 안 되지…”
건혁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났다.
수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건혁의 표정을 보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을 걸면
오히려 더 복잡해질 것 같아서.
수리는 슬쩍 건혁을 보며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건혁이 좋아하던 와플을 사 오기로.
“와플을 먹으며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밝게 미소를 짓던 한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요.”라며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금방 다녀올게요.”
수리는 작게 중얼거리듯 말하고
조용히 현관을 나섰다.
와플 가게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노릇하게 구워지는 냄새에
수리는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초콜릿… 아니, 생크림도 넣을까.”
봉투를 받아 들고 받고 좋아할 건혁의 모습을 떠올린 순간,
"어이, 오랜만이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 들렸다.
"너는..."
"하수리, 나 기억하냐?
수리는 봉투를 꽉 쥐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와플의 따뜻함이 손바닥에 남아 있었지만
등골은 서늘하게 식어 갔다.
천천히 돌아보았다.
골목 입구.
가로등 아래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를 걸친 키 큰 남자.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아라…”
수리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마아라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고개를 갸웃했다.
“오, 이름 기억하네?”
“…”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울기만 하더니.”
그의 웃음은 친근함과 거리가 멀었다.
수리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골목 끝에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마아라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천천히 걸어왔다.
“도망 잘 다녔다, 수리야.”
“……”
“마법계 난리 난 거 알아?”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왕실에서 직접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수리를 가리켰다.
“도망자 하수리 체포.”
수리는 숨을 삼켰다.
그는 씩 웃었다.
“그래서 내가 왔지.”
골목에 바람이 스쳤다.
수리는 조용히 물었다.
“역시 그때 그 균열은...
그런데 … 왜 너야.”
마아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옛 친구잖아.”
그리고 낮게 덧붙였다.
“내가 제일 잘 잡을 수 있으니까.”
수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
마아라는 고개를 기울였다.
“돌아갈 수 없다고?”
그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돌아가야지.”
그리고 낮게 말했다.
“죽어서라도.”
툭.
초콜릿 시럽이 바닥에 떨어졌다.
수리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 또야.”
수리의 ㅅ는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아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 그래서였구나.”
그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도망 다니더니 몸이 망가졌네? 지팡이는 엿 바꾸어 먹었냐?”
수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
마아라는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에서 작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걱정 마. 조용히 데려갈게.”
마아라가 서서히 수리에게 다가오는 그 순간,
"아스트로 룸잇"
수리가 마아라에게 마법을 쓰며 도망을 쳤다.
앞만 보고 계속 달렸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리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골목 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진짜 답답하다니까?”
수리는 걸음을 멈췄다.
벽 쪽에 몰린 아이 하나.
교복은 조금 낡아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너는 도대체 왜 사는 거냐? 부모도 네가 한심해서 도망간 것 아니야?”
웃음소리와 비아냥 가득한 그 장면이,
이상할 만큼 익숙했다.
수리의 시야가 흔들렸다.
아빠는 자신이 때어나자마자 사라졌고, 엄마는 사고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법 학교에 처음 갔을 때,
수리는 이미 주위에 아무도 없는 혼자였다.
마력 측정 날.
수치가 낮게 나왔을 때
교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저 정도면 거의 실패작 아니야?.”
“쟤랑 팀 되면 손해 아냐?”
그 말들은 수리를 너무 괴롭게 했다.
심지어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폭력도 당했다.
혼자 남은 복도.
쏟아지는 말들.
약하다.
쓸모없다.
왜 살아 있어?
수리는 이를 악물었다.
울지 않으려고. 마법사니까.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가장 먼저 폭주했다.
“그만하세요.”
수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어른이야?” “상관 말고 가세요.”
수리는 손에 든 와플 봉투를 꼭 쥐었다.
“그만두라고요.”
그 순간

손가락은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주위에 모든 사람이 멈췄다.
“똑같네.”
뒤에서 들린 목소리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
수리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벽에 기대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마아라가 보였다.
입가에는
어릴 때와 똑같은
비틀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때의 너랑.”
그는 한 발짝 다가왔다.
“여전히.”
잠시 말을 끊더니 낮게 웃었다.
“약하고. 한심하네.”
“그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거의 숨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마아라는 멈추지 않았다.
“그만?”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골목에 웃음소리가 울렸다.
“겁쟁이 같은 놈이
누구한테 그만이야?”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아라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때 기억나?”
그는 손가락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복도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던 거.”
수리의 숨이 거칠어졌다.
“학생들 오면 또 맞고, 찌그러져있고, 우리의 장난감처럼...
와… 그거 진짜 볼만했는데.”
수리의 손에 들려 있던
와플 봉투가 구겨졌다.
초콜릿이
봉투 안에서 묻어 나왔다.
“그만…”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말했다.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약해 빠져 가지고.”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니까 너 아빠가 도망쳤지.”
수리의 시야가
순간 흔들렸다.
“엄마도…”
그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그만...”
수리의 목소리가 더 그 크게 울렸다.
하지만 마아라는 멈추지 않았다.
입꼬리를 더 올렸다.
“…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도망치다 죽은 거 아니냐?”
그 순간.
수리의 심장이
세게 내려앉았다.
“그만하라고!!!!!!”
외침이 골목을 갈랐다.
그리고
공기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낮은 진동이
골목 전체를 울렸다.
수리의 발밑에서
먼지가 떠올랐다.
손끝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불꽃처럼.
하지만
순식간에
폭발하듯 퍼졌다.
“……!”
빛이 수리를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뜨거운 열기가
바람처럼 퍼졌다.
간판이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가로등 불빛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수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귀 속에서는 오직 하나의 소리만 울렸다.
― 약하다.
― 쓸모없다.
― 왜 살아 있어?
수리는 숨을 헐떡였다.
“하… 하…”
손끝에서
빛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어가 되지 않았다.
감정이
마력으로 변해
폭주하고 있었다.
마아라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오.”
그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이거 재미있는데?”
...
건혁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현관 앞에서 멈췄다.
불이 꺼져 있었다.
“…수리 씨?”
대답이 없었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건혁은 시계를 보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언제부터 집에 없던 거지…”
그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조여 왔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었다.
잠시 서 있던 그는
재킷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공기가 차갑게 스며들었다.
“설마…”
건혁은 뛰기 시작했다.
도시의 신호등이
차례로 바뀌고 있었다.
초록.
빨강.
초록.
규칙적인 빛들이
도시를 채우고 있었지만
건혁의 머릿속은
이상하게 소란스러웠다.
그때.
멀리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저기서 뭐야!”
“불이야?!”
“아니… 빛인데?!”
건혁의 걸음이 멈췄다.
골목 쪽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건혁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