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품은 아이와 꽃이 피던 순간

by 따심토

“마력도 없으면서 왜 여기 있어?”
그 말이 교실 안에서 터져 나왔다.
그 말은 들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니 낡은 나무바닥이 보였다.
여기저기 긁혀 있고
조금씩 닳아 있는..
마치 나 같았다.
조금 전 넘어지면서 거칠게 긁힌 탓에 손바닥이 따끔 거렸다.
피가 나왔지만 닦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 더 아픈 곳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이 자꾸 흐려졌다.
나는 급하게 눈을 깜빡였다.
'안 돼. 울면 안 된다. 울면 더 약해 보일 테니까.'
그래서 고개를 더 숙였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지만 눈물이
자꾸만 고여 왔다.
‘내가 잘못 태어난 걸까.’
그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나는… 이렇게 약한 거지.’
그리고
항상 마지막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이 가장 아팠다.
‘나 때문에…’
목이 조여 왔다.
‘나 때문에 엄마가…’
나는 교실에서 나와 아무도 오지 않는 학교 뒤쪽으로 걸어갔다.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내 몸을 꼭 끌어안았다.
복도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뛰어다녔다.
누군가는 떠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소리가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숨을 참았다.
그러다 결국
툭.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 울면 안 되는데.
나는 급하게 눈을 닦았다.
그때였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몸을 굳이 굳었다.
'마아라처럼 나를 괴롭히는 놈일까?'
'아니면 또 나를 보고 웃으러 온 사람인가?'
그렇게 여러 추측을 생각하고 더 고개를 숙였는데
그때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자신을 때리면,
세상은 더 쉽게 너를 때릴 거야.”
나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낯선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복도 창문에서 들어온 빛 사이로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연한 꽃무늬 옷을 입은 여자였다.
바람이 살짝 불어 옷자락이 흔들렸다.
나는 잠깐 그 사람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사람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물었다.
“울고 있니?”
나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막혀서.
그래서 그냥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울지 않는다고.
울면 약해 보이니까.
그 여자는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내 앞에 천천히 앉았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봤다.
이상하게 여자의 눈을 보니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여자가 말했다.
“네 엄마랑 나는 친구였단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멈춘 것 같았다.
“너는 네 엄마랑 똑같이 생겼구나.”
심장이 급하게 뛰었다.
“우리… 엄마를 아세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여자는 작게 웃었다.
“그럼.”
그리고
조금 먼 곳을 보는 눈으로 말했다.
“네 엄마랑 가장 친한 친구였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그 사람 얼굴만 바라봤다.
엄마를 아는 사람...
여자는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수리야.”
내 이름을
아주 자연스럽게 불렀다.
“너는 빛을 품고 태어났어.”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저는 너무 약하고 나약한 존재예요.”
말을 하다가 목이 막혔다.
“아무리 해도…”
손을 꽉 쥐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못해요.”
눈물이 또 올라왔다.
여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빛은 크기로 증명되지 않아.”
그녀의 손이
내 이마 위에 올라왔다.

정말 포근했다.
“넘어질 줄 아는 사람은
남의 아픔도 알아보게 되거든.”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가슴은 편안히 뛰고 있었다.
여자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니까…”
잠시 말을 멈추고
내 눈을 바라봤다.
“너 자신을 그렇게 미워하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나는 급하게 눈을 닦으려 했다.
“괜찮아.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졌다.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인 채 계속 울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참아왔던 울음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 앞에서 울었다.
...
“수리 씨…?”
건혁은 자욱한 연기를 가로지르며 수리를 향해 달렸다.
골목은 이미 엉망이었다.
아스팔트는 이미 갈라져 있었고
부서진 바닥 위로 균열 같은 빛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수리 씨,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건혁은 몇 번이나 수리를 불렀지만 수리에게는
닿지 못했다.
수리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손끝에서 마력이 새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수리 씨, 봐요. 저예요. 건혁이예요.”
건혁이 한 발 다가가려는 순간.
공기가 찢어졌다.
“윽…!”
마력이 날카로운 열로 변해 건혁의 손등을 스쳐 지나가 피가 맺혔다.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수리는 보지 못했다.
“안 돼… 그만… 제발 그만…”
울음인지 모를 말들이 뒤엉켜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골목을 긁었다.
"재밌어. 재밌어."
건혁의 시선이 검은 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마아라였다.
그의 입가에는 기묘하게 비틀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 더 해봐."
그는 천천히 손뼉을 쳤다.
"이거 완전 마물 폭탄이잖아."
건혁의 눈이 굳었다.
"당신 뭐야! 수리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마아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
그리고 피식 웃었다.
"난 그냥 수리에게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한 것뿐이야."
그는 폭주하는 수리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더 재밌네. 역시 나의 장난감이야."
이번에는 건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장 멈춰요."
"왜? 스스로 폭주한 건데. 그리고 내가 왜 저 애 때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수리를 가리켰다.
"저건 이제 사람도 아니야. 인간계와 마법계의 법을 어긴 괴물이라고."
굳은 건혁의 표정을 보며 마아라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건 그냥"
잠시 말을 끊고, 더 낮게 웃었다.
"불완정한 쓰레기 덩어리지."
건혁의 눈이 번뜩였다.
"입 닥쳐."
마아라는 눈썹을 올렸다.
"오?"
"수리씨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마."
건혁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아는 척?"
마아라는 웃음을 짓으며 건혁의 앞으로 한걸을 다가왔다.
"난 저 애를 아주 잘 알아."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울보였고."
건혁의 주먹이 천천히 쥐어졌다.
"마법도 제대로 못쓰는 얼간이였고."
"..."
"맞으며 도망만 치는 겁쟁이이고."
"..."
"약해빠져 부모를 죽인..."

건혁의 주먹이 마아라의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수리씨에 대해 네 같은 놈이 뭘 알아. 수리씨는 그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서툴기 해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누구보다도 용감한 마법사야."
마아라는 천천히 자신의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는 피가 번져있었다.
"... 하."
건혁의 숨이 거칠어졌다.
"수리 씨는"
"... 하하."
"당신 같은 사람이 입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 짐승 같은 쓰레기야."
마아라는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그리고 난 뒤 천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의 눈이 초점 없이 식어갔다.
"한낱 인간 따위가 마법계 왕실 전문 마법사에게 손을 대."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아스트라 모르테, 벨라툼 이그니스."
손가락 사이에서 검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안 되겠다. 수리를 잡기 전에 너부터 죽어야 되겠다."
마력이 마아라의 손위에서 응축되기 시작했다.
"네가 뭔데. 내 일을 방해해?"
건혁은 겁이 났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마법이 터지려는 순간...
바람이 멎었고
소음이 멈췄다.
폭주하던 수리의 마력 파동이 민치 누군가 손으로 덮은 것처럼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또각.
구두 소리 하나가 울렸다.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고개를 들자
그곳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
연한 색의 원피스에는
정교한 꽃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꽃잎이 숨 쉬듯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구야."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수리를 향해 한마디는 내뱉었다.
"이제 괜찮아."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말은 수리에게 닿았는지 수리의 폭주가 점차 수그려지고 있었다.
여자가 한 걸을 다가왔다.
마아라의 마법진이 여자가 앞에 서니 조용히 사라졌다.
"뭐야...? 당신 마법사야?"
마아라의 표정이 굳었다.
곧 여자가 마아라를 향해 무슨 말을 중얼거렸고, 마아라의 몸을 돌처럼 굳었다.
여자가 수리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수리 근처에 온기가 번졌다.
“……아…”
수리의 몸이 크게 흔들리더니 힘없이 무너졌다.
건혁은 달려가 수리를 붙잡았다.
그 순간
마아라가 손을 들며 마력을 모았다.
"야. 누구 허락받고 지금 나서는 거야!"
하지만 여자의 눈이 마아라를 향하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력이 사라지다니..."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마아라는 이를 갈며 여자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웃었다.
"오늘은 재밌는 일이 계속 생기는 군. 인간 네가 나에게 남긴 빚은 꼭 갚아주겠어."
그는 뒤돌아섰다.
"다음에 또 보자고."
그 말을 한 뒤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골목에는 고요만 남아있었다.
건혁은 숨을 고르며 수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수리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여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건혁에게 시선을 옮기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군요.”
“… 누구세요?”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를 붙잡아 주는 사람”
그녀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부서진 건물.
깨진 유리.
공포에 질린 사람들.
여자가 손을 들었다.
"실렌티아 아스트라"
꽃문양이
원피스에서 떨어져 나온 뒤 공중에 퍼졌다.
그뒤
부서진 것들이 되감기 한 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균열은 닫히고,
파편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의 눈빛이
천천히 흐려졌다.
“이게 무슨...”
“기억은 남기지 않는 게 좋아요.”
여자가 말하자
사람들은 하나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골목에는
건혁과 여자,
그리고 잠든 수리만 남았다.
여자는 잠든 수리를 바라봤다.
“이 아이는 당신을 만나서 성장하는 중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천히 미소를 짓었고, 꽃 그림이
천천히 원피스로 돌아왔다.
“때가 되면 다시 만나요.”
그 말과 함께 여자의 주위에 장미가 피며 사라졌다.
이제 건혁과 수리만 남았다.
건혁의 몸은 이미 망신창이였다.
건혁은 수리를 안으며 벽에 등을 기대고 안
건혁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눈이 감겼다.
수리는 그의 품에서
작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건혁은 수리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수리를 보며 무언가의 공포를 느꼈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