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배구를 한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공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것이어서 공중에 뜨는 순간, 무서운데도 치고 넘기고 받아가며 내게 힘을 준다.
겉으로 볼 때 배구를 잘해야 한다. 일단 키도 평균은 넘고 팔다리 튼튼하니 누가 봐도 배구를 잘할 것 같은 몸이다. 하지만 그 몸은 배구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지라 매번 날아오는 공은 코트 밖으로 나가기 일쑤요 나와 옆 사람이 선 가운데 떨어지기 일쑤다. 공을 놓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은 그걸 못 받냐 하는 듯하다. 내가 더 간절히 받고 싶은 걸 알고 있을 텐데.
왜 그 모양일까? 하루는 너무 답답해 집으로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먼저 나는 날아오는 공을 무서워한다. 발로 차는 축구는 곧잘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중으로 높이 뜬 공은 얄밉게도 사람이 주는 힘에 따라 방향이 바뀌고 속도도 다르다. 언제 내 앞에 떨어질지 어느 지점에 도착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라는 것. 나름 견주어서 팔을 뻗으면 공은 내 마음과 먼 곳으로 날아가거나 아예 팔에 닿지도 못한다.
이게 뭐라고 이러나 싶기도 하다. 찾아보면 내가 잘 다룰 수 있는 공이 있을 텐데. 아니 공 말고 다른 것을 가지고 놀면 될 텐데. 읽어야 할 책이 있고 해야 할 과제가 있고 해내야 할 역할도 있는데 그리고 그걸 하면 잘하는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자존감까지 상해가며 하나 싶다.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배구는 혼자서 상대하는 경기가 아니라서 좋다. 나와 함께 공을 넘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든든해서 좋다. 함께 바라보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넘겨준다. 그러면 또 그렇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만들어져서 넘어오는 공을 받아넘기기 위해 한 마음으로 공을 바라본다. 공이 가는 곳을 따라 그렇게 마음이 모이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이 모이지 않으면 넘길 수 없다는 것이 좋다. 참 신기하게도.
각자 자기가 맡아야 할 땅이 있다는 것도 좋다. 내가 선 자리만 잘 지키면 된다. 온 운동장이 내 땅이 되어야 하는 축구랑은 다르다. 내가 선 위치에서 내게 오는 공만 잘 받아주면 된다. 서로가 서 있는 땅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주고 기다려 준다는 것이 좋다. 그 가운데 지점쯤 어딘가에 공이 떨어지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든든해서 좋다. 그것이 애매함을 줄 때는 내 것임을 외치며 받아내어도 된다는 것이 좋다.
어딘가 정해진 곳에 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일 매력적이다. 골대에도 바구니에도 넣지 않는다. 오롯이 공중에 있도록 허락된다.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공이 마치 내가 된 것 같다. 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주워 던지면 되지만 최선을 다해 떠 있도록 하는 그 순간을 오래 갖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일테니.
방 한켠에 놓인 공을 바라본다. 이번 주 목요일에도 저게 뭐라고 땀을 흘리며 넘기고 받고 하겠지? 저 공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