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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테하라 Mar 04. 2023

민담의 힘

'사이'에 사는 크노이스의 후손

그림형제 민담 중에 '크노이스트와 세 아들'이 있다. 이 소담은 꿈처럼 낯선 시공간에 데리고 간다. 꿈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뒤죽박죽, 장소는 어딘지. 등장인물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어라? 이런 꿈을 왜 꾸었지?


베럴과 조이스트에 사이에 크노이스트가 있는데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하나는 장님이고 하나는 절름발이고 하나는 알몸뚱이다. 들에서 토끼를 보았다. 장님이 쏘고, 절름발이가 달려가고, 알몸뚱이가 주머니에 넣었다. 가다가 엄청나게 큰 호수에 배가 세 척 있는데, 하나는 새고, 하나는 가라앉았고, 하나는 바닥이 없다. 바닥 없는 배를 타고 가니 엄청나게 큰 숲이 있고, 숲에는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다. 나무속에 엄청나게 큰 예배당이 있고, 그 안에 자작나무 교회지기와 회양목 목사가 곤봉으로 성수를 뿌렸다. '성수를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


베럴과 조이스트 '사이'에 사는 사람은 크노이스트이다. 그의 한 아들은 맹목적이고 또 한 아들은 의지가 결여되었으며 나머지 한 아들은 자아를 걸치지 못한 사람이다.  장님이 토끼를 보고 쏘았다. 장님인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말하고 그것을 잡으러 뛰어가는 절름발이와 잡아서 주머니에 넣는 알몸뚱이. 알몸인데 주머니가 어디 있나? 동화니까 말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것보다 더 심하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 다닌다. 장님이라도 본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것이 망상일 뿐이다. 절름발이라고 못 뛰는 아니다. 다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늦어질 뿐이다. 그러나 알몸뚱이는 주머니가 없다. 망상은 잡을 수 없고, 없는 것을 주머니에 넣을 수 없는데 그들은 그렇다고 믿을 뿐이다. 그것이 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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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있는 세 척의 배는 이곳과 저곳을 건너가야 하는 이동수단을 말한다. 생각이 하나의 영역이라면 물을 건너야 한다. 사고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현실을 반영하여야 한다. 하나의 배는 새고, 하나는 가라앉았고, 또 하나는 바닥이 없다. 이미 주어진 배로는 도저히 저쪽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아들은 성공을 계승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실패 또한 예정되었다.  바닥이 없는 추락은 엄청나게 큰 숲으로 그들을 이동시켰다. 그곳은 모든 군상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엄청나게 큰 나무속에 엄청나게 큰 예배당이 있다. 능력에 비해 엄청나게 자신 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들 속에 엄청나게 큰 교회가 있다.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초자아다. 과도하게 큰 초자아가 바로 그를 장님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안에 있는 교회지기와 성직자는 그를 더 완벽하게 더 이상적인 사람이 되도록 요구한다. 곤봉으로. 

성수는 사제가 구마의식할 때 쓰는 성스러운 물이다. 그 물은 영혼을 정화하며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성수는 보통 성채나 종려나무 가지로 뿌리는데 그것을 곤봉으로 뿌리는 사제라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겉모습은 사제이나 그가 우리에게 폭력을 행하고 있다. 맹신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무조건 믿는 것은 눈을 뜨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것이 통찰이다. 

 

저작권보호를 받는 이미지일 수 있습니다 출처: 조약의 세계사 베스트팔렌조약

현실이 이 소담보다 더 나은가? 


지금은 이 소담에 나오는 크노이스트의 세 아들이 우리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꿈은 현실반영이다. 옛이야기가 현실에 너무나 닮았다. 언제적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계속 되고 있는지.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란다. 

돈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제프 딕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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