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시스템에 비춰 살펴본 각 나라의 질병대응, 이민대책

by 용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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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covid-19가 2020년에는 결국 전세계로 번졌다. 벌써 잊혀져가는 과거이지만 이 당시 우리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covid 방역에 임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비록 covid라는 재앙적 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들을 몸서리치게 했지만, 재해를 대하는 각 나라의 사회적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 과정에서 각국가의 문화적 정치적 특징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며 문득 인간의 면역시스템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면역체계와 각 나라의 방역 대응양상 사이의 유사점을 음미하며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다.

covid-19의 발원지로 지목되는 중국에서는 바이러스 전파 초기에 이를 대중에 알리려는 자들의 시도를 차단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국가에 위협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 통제를 통해 사태를 덮으려 하는 것이 공산주의 국가의 일반적 대응방식이기에 중국의 이러한 모습은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입막음 시도에도 바이러스의 전파력은 강했으며, 이에 못지않게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의 전파력도 강했다. 중국이 바이러스 전파사실을 입막음하려 시도했던 정황들이 SNS를 통해 전세계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이후 중국의 상황은 보다 철저한 '통제' 쪽으로 접어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이런 강한 통제는 어느정도 먹혀드는 것 처럼 보였다. 중국이 발표하는 전염자 통계는 감소하는 모습이었다.(진실은 알 수 없지만...)

결국 이러한 '통제상황'이 바이러스에 대한 통제가 성공한 결과물인지, SNS에 대한 통제가 성공한 결과물인지는 알기 어렵게 되었다. 어쩌면 둘 다 '적당히'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외부에서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 '면역 체계'를 발동하게 된다. 병원균을 면역체계로 잡지 못하면 균은 자기복제를 통해 세를 늘리게 되고 결국 인간의 몸을 점령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H.G. Wells의 SF 소설 '우주전쟁' 에는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들이 인간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였으나 세균에 대한 면역체계 부재로 인해 결국 패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의 강력함을 소설적 상상으로 승화시킨 명작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실로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이 때 최초의 과정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피아의 식별'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세균이 우리 몸 유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이들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피아의 식별을 위해 우리 몸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준비를 한다. 우리 몸 안의 물질들에 대해 모두 등록을 해 놓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 몸 안 모든 물질들의 목록을 작성해 놓고, 병원균이 들어왔을 때에는 그 목록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 제거한다.

가끔 피아식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우리 몸 유래의 물질들을 외부의 것으로 잘 못 판단해 공격하는 일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자가면역 질환이다. SLE, 류마티스 질환 등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가면역 질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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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가 covid-19라는 바이러스, 즉 '외부 물질'에 어떻게 대하고 막았는지 살펴보자.

먼저 대한민국이다. 한국의 대응은 비교적 초기 단계부터 ‘외부 위협의 명확한 식별’에 성공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중국 내 감염 상황이 알려진 직후부터 질병관리 체계를 전면 가동했고, 진단 키트의 신속한 개발과 대규모 검사, 확진자 동선 공개 및 접촉자 추적을 통해 바이러스의 확산 경로를 가시화했다. 이는 면역학적으로 보자면, 병원균의 항원을 빠르게 인식하고 선천면역과 후천면역을 동시에 활성화한 경우에 가깝다. 물론 사생활 침해 논란이라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사회 전체가 ‘바이러스는 외부의 위협’이라는 공감대를 비교적 빠르게 형성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었다.

일본의 대응은 대조적이다. 일본은 강력한 봉쇄나 대규모 검사 대신, 비교적 제한적인 검사와 ‘클러스터 관리’ 중심의 전략을 택했다. 이는 국가 면역체계가 과잉 반응을 피하려 한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충분한 검사라는 전제 위에서만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초기에는 감염 규모가 과소평가되었고, 그 결과 국민들 역시 위협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기 어려웠다. 다만 마스크 착용 문화와 높은 공중위생 수준이라는 ‘기저 면역력’ 덕분에 폭발적인 붕괴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지만 독특한 대응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은 covid-19 대응에 있어 ‘면역 체계의 혼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국가 중 하나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의 엇갈린 메시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위험 평가의 왜곡, 그리고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마저 이념의 문제로 전환된 상황은, 외부 병원균을 명확한 적으로 규정하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다. 면역학적으로 비유하자면, 병원균이 침입했음에도 이를 ‘자기 일부’로 오인하거나 공격 여부를 두고 내부 신호가 충돌하는 상태에 가깝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자원을 보유하고도 막대한 확진자와 사망자를 경험해야 했다.


이처럼 covid-19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단순한 행정 능력의 차이를 넘어, 사회가 위협을 인식하고 합의에 이르는 방식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냈다. 어떤 사회는 빠르게 ‘피아를 식별’하고 공동의 행동에 나섰고, 어떤 사회는 내부 갈등 속에서 면역 반응이 지연되거나 왜곡되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이번에는 요즘 대두되고 있는 '이민자 수용정책'에 대해서도 한번 각국의 대응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만 이 비유는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이민자는 바이러스가 아니며, 위협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어떻게 ‘구분하고 통합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면역체계의 핵심은 무차별적 공격이 아니라 정확한 피아 식별과 조절된 반응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해 공격하는 면역체계는 생존하지 못한다. 이는 패혈증이나 사이토카인 폭풍처럼, 과도한 면역 반응이 오히려 숙주를 죽이는 상황과 같다. 반대로 외부 침입자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면역체계 역시 감염에 취약하다. 이민 정책 또한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covid 대응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대한민국을 보자. 한국의 방역은 ‘국경 봉쇄’보다는 ‘선별과 추적’에 가까웠다. 무조건적인 차단이 아니라, 검사·격리·추적이라는 절차를 통해 위험도를 평가하고 관리했다. 이를 이민 문제에 대입하면, 핵심은 배제냐 수용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어떤 속도로, 어떤 보호 장치를 갖추고 사회에 편입시키느냐가 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유입은 사회적 마찰을 낳고, 반대로 체계적 관리가 이루어질 경우 이민은 노동력, 인구 구조, 문화적 역동성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일본은 covid 대응에서처럼 이민 문제에서도 ‘저반응 전략’을 취해 왔다. 제한적 수용, 엄격한 자격 요건, 느린 제도 변화는 과잉 반응을 피하는 대신 구조적 인구 감소라는 장기적 위험을 키우고 있다. 이는 면역 반응이 지나치게 둔감해, 당장은 염증이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감염에 취약해지는 상태와 닮아 있다. 일본 사회의 안정성은 유지되지만, 그 안정성이 미래의 활력을 담보해 주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의 경우는 covid 방역과 이민 정책 모두에서 ‘면역 혼선’이 반복되었다. 이민 문제는 경제, 인권, 치안, 정체성의 문제가 뒤엉키며 정치적 양극화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이는 마스크 착용이나 백신 접종이 이념의 문제가 되었던 covid 시기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외부 유입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상태에서는, 정책은 일관성을 잃고 사회 내부의 갈등 신호만 증폭된다. 면역학적으로 말하면, 공격 신호와 억제 신호가 동시에 발동해 체계가 혼란에 빠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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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안정적인 이민 통합을 이뤄온 국가들, 예컨대 캐나다나 독일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민을 ‘통제 불가능한 외부 자극’이 아니라, 제도 속에서 관리해야 할 변수로 인식해 왔다. 언어 교육, 노동 시장 연계, 사회보장 체계 편입 등은 마치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을 형성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완전히 동일한 존재로 만들려 하지 않되, 적대적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이들 나라는 이민자 문제로 상당한 사회적 부담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는 이들 국가의 이민 정책이 ‘틀렸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면역체계의 조절 한계를 넘어서는 자극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면역학적으로 보자면, 초기의 이민 수용은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을 형성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외부 항원에 대해 불필요한 공격을 하지 않도록 학습하고, 이를 제도와 교육, 복지 체계 안으로 흡수해 왔다. 캐나다의 포인트 기반 이민 제도나 독일의 노동력 중심 이민 정책은 일종의 선별적 항원 제시에 해당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두 국가가 직면한 문제는, 항원의 ‘질’이 아니라 ‘양’과 ‘속도’에 있다. 급격히 증가한 이민자 수, 난민 유입, 그리고 이를 감당할 주거·복지·치안·교육 시스템의 포화 상태는, 면역계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만성 염증 상태와 유사하다.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악의나 차별이라기보다, 사회 시스템 전반에서 피로와 과부하가 누적된 결과다.

독일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이민자 밀집으로 인한 치안 문제와 사회 통합 실패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도되며, 이는 마치 국소적인 염증 반응이 전신 반응으로 확산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캐나다 역시 주거난과 의료 접근성 저하, 재정 부담 문제가 겹치며 기존의 ‘이민 친화적 정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는 면역계가 더 이상 정밀한 조절 반응을 유지하지 못하고, 과민 반응과 무반응이 동시에 나타나는 불안정 상태와 닮아 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를 단순히 “이민 정책의 실패”나 “다문화주의의 한계”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조절(regulation)의 문제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면역체계도 지나친 관용은 감염에 취약해지고, 과도한 공격은 자가면역 질환으로 이어진다. 현재 캐나다와 독일이 겪는 혼란은, 이민자라는 ‘외부 항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처리하는 사회적 면역 조절 기전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민자 수용 문제는 covid 방역과 마찬가지로 “열어야 하느냐, 닫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속도, 규모, 그리고 조절 능력이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완충 장치 없이 유입이 가속화될 경우, 아무리 선의로 설계된 정책이라도 면역 폭주처럼 사회 전체의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

covid-19가 우리에게 보여준 교훈은 분명하다. 성공적인 방역도, 성숙한 이민 정책도 단발적 결단이 아니라 지속적인 조절과 피드백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국가의 진짜 역량은 외부 자극을 완전히 차단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과부하가 걸릴 때는 스스로 속도를 늦출 줄 아는 능력, 바로 그 지점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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