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동물이다. 사회화가 되기 이전의 어린 인간은 동물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낸다.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울고 짜증을 내고, 참지 못하고 다른 이의 것을 뺏기도 하고 심하면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난 직후부터 가정이라는 사회 속에서 1차적인 사회화 교육을 받는다. '남의 것은 뺏으면 안 돼, 항상 참고 순서를 기다려, 남을 때리면 안 돼!' 이런 단순한 사실을 수도 없이 교육받는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인간들은 2차적으로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좀 더 심화된 사회화 교육을 받는다. 학교는 인간이 진짜로 인간이 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다. 사회화가 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은 아주 드물긴 하지만 정글에 버려져 동물과 함께 자라난 인간을 통해 알 수가 있다. 그런 인간은 말을 못 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동물적 충동과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그들에게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습은 관찰되지 않는다.
요즘 들어 학생이 선생님을 공격했다는 기사를 접하는 일이 많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은 공격한 학생을 비난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지만 실상 문제는 대개 학부모에게 있다. 아이가 타고난 기질에 문제가 있어서 평소 공격성을 나타내었다면 1차적으로는 가정에서 강한 사회화 교육을 통해 인간성을 갖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게 충분히 힘을 썼는데도 해결이 되지 않는 심한 아이들에게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치료의 영역이다. 요즘 유행하는 '금쪽이' 프로그램은 그런 치료의 과정을 보여준다. 다만 '금쪽이'는 어찌 되었든 내 새끼가 더 이상 교육만으로 안 되어 치료가 필요하겠구나 라는 사실을 인정한 부모에게 한정된 이야기이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는 '금쪽이'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하고 나중에 커서 '흉쪽이'가 되도록 방치되는 사례가 훨씬 많다. ADHD처럼 유년기에 학급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데도 치료를 받지 않으면 그 아이는 자라는 과정에 자기 효능감이 떨어져 자신감과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다. '내 자식이 무슨 정신과 치료를 받아!'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제 때에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잘 치료만 받으면 다른 아이들처럼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치료를 제때에 받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에 갇혀 평생을 살게 된다. '네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부모인 내 마음이 아프니까'라는 너무도 이기적인 이유로 자식의 중요한 치료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학부모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도 있는 아이의 치료 권리를 왜 부모들이 이기적으로 빼앗는단 말인가? 치료까지는 필요 없을 것이라는 부모들의 주장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ADHD
아이들이 가정에서 1차적 교육이 잘 안 되면 사회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1차적 교육의 구멍을 학교라는 2차적 교육기관에서 어느 정도 메워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2차 교육기관은 더 이상 사회화를 수행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어린 인간들의 사회화를 시킬 만한 아무런 힘이 없다. 교권은 땅에 떨어졌다. 지금 상황에서 학교에 그런 사회화 교육을 요구한다면 그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가정에서의 사회화든 학교에서의 사회화든 사회화의 담당자에게는 권한과 위엄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없는데 어떻게 사회화를 한단 말인가? '이렇게 해줄래?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겠니?'는 이미 사회화가 된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사회화가 잘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씨알이 안 먹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어린 인간 쪽에서 시비를 걸어오게 되는 게 현실이다. 지금의 학교는 그냥 강의를 하는 곳이다. 지식만 넣어주는 곳 그 이상이 아니다.
다시 1차적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자. 1차적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어린 인간은 사회화가 덜 되어 동물으로서의 각종 본능을 표출한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안위,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그것이 침범당하면 화를 표출한다. 사회화가 되지 않아 예의범절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아도 기질적인 이유 등으로 그것에 따를 억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어린 인간에게 강의밖에 할 권한이 없는 담임선생님이 과연 어떻게 사회화 교육을 할 것인가? 담임에게 매를 줘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퇴행일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께 맞았던 매들이 결국 내게 큰 약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필자조차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인권이 그동안 향상되어 온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교권이 없어졌다는 것이 문제다. 담임선생님에게는 교육자로서의, 스승으로서의 위엄과 권한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선생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두려워할 만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린 인간들의 사회화가, 진정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인간은 본래 동물이다.
아쉽게도 1차적 교육이 잘 안 되는 가정은 그 원인이 부모에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의 1차적 사회화를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그 부모 또한 당신의 부모로부터 1차적 교육을 제대로 못한 결과일 수 있다. 그 결과 스승이라는 대상에 대해 공경심을 가지는, 올바로 사회화된 인간의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부모에게 학교 선생님은 스승이 아니라 단지 강의를 하는 강사쯤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런 부모의 아이를, 담임선생님이 훈육하시겠다고 혼이라도 내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는가? 결과는 뻔하다. '야 네가 뭔데 내 자식한테 뭘 잘못했니 어쩌니 하는 거야? 나 이런 사람이야. 너 나한테 혼나고 싶어?' 너무 슬프게도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교육 현실이다.
사회화가 덜 된 학부모는 얼핏 자기 자식만큼은 끔찍이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내 자식이 다른 아이를 때렸다면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때로는 '비록 때리긴 했지만 내 자식의 마음은 한 번 생각을 해봤냐'라고 오히려 담임선생님에게 반문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 질문은 학부모가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부모로서 아이의 마음을 정말 잘 헤아려 봤을까? 아이의 문제행동이 지속되는데 이 정도면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고. 속이 좁은 필자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만큼 그 대가는 분명히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사회는, 아니 우리는 결국 '그 아이'를 끔찍하게 싫어하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많이 받았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을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충동조절이 안되고 문제를 계속 일으키는 아이는 결국 사회로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그 부모의 결정에 대한 대가이다.
비록 그들에게 조금 미운 마음이 들지라도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린아이들을 위해 꾹 참고 선의를 담아 말하고자 한다. '그렇게 감싸고도는 당신들 행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당신들의 아이다'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