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말 귀신이 무섭지 않습니다. 제가 뭐 겁이 없는 사람이라든지 다른 사람보다 담력이 10배는 높다든지 그런 사람은 아닌데, 정말 귀신은 무섭지 않습니다. 귀신이 무섭지 않게 된 지는 한 7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지금은 혹시라도 정말 귀신을 보게 된다면 너무 기뻐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친구랑 자정이 넘게까지 술을 마시고 도시 외곽의 굴다리 아래를 걸어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굴다리가 길진 않았는데 주변에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정말 무슨 깜깜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친구가 '야 귀신 나올 것 같지 않냐?'라고 하길래 '나는 귀신이 무섭지 않아 만동아'라고 진심으로 말해줬습니다.
친구는 어이없어했고 어둠 속을 뚫고 나오자마자 갑자기 심각한 말투로'야 너 못 봤어?'라고 하더니 조금 전 어둠 속에서 이상한 것을 봤다고 무서운 분위기를 조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친구의 의도를 알아차리면서도 '귀신이야? 진짜 귀신이면 좋겠다'라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친구는 흥이 깨져버렸는지 헤어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가버렸습니다. 제가 왜 귀신을 안 무서워하는지 이야기해 주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쳐버렸죠.
저는 담력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겁이 많은 축에 속할 겁니다. 바이킹이나 청룡열차 같은 놀이기구도 무서워서 못 타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귀신을 무서워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귀신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육체 없이 영혼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죽은 자의 넋'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죽은 자의 영혼'입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죽음이 진지하고 무겁게 그리고 두렵게 다가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게 학생 때일 수도 있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일 수도 있고 더 나이 들어서일 수도 있고 뭐 사람마다 다양할 겁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떤 이들은 종교에서 구원을 얻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죽음'을 잊고 살아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가끔씩 그걸 꺼내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겁먹은 채로 살아갑니다.
저는 30살 즈음에 친구 하나를 하늘 위로 떠나보내고 나서부터는 가끔 자기 전에 '죽음'을 꺼내보면서 혼자 숨죽인 채 몸서리치곤 합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릅니다. 아직 진지하게 접해보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튼 저 같은 경우는 쉽게 종교적 믿음이 생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죽음에 대해 해답을 얻지 못한 저는 그냥 '죽으면 다 끝'이라는 간단한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이러다 보니 저에게 죽음은 그야말로 완전한 끝입니다. 그다음은 없습니다. 그냥 끝입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 '곤지암'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게 벌써 7년 전이네요. 무서웠습니다. 저는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제가 담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결정적 장면에서 심장이 쫄깃해지는 맛이 좋아 봅니다. 매운맛에 중독된 것처럼 정신건강에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 끊을 수가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확 뛰쳐나오는 그 의문의 존재들... 짜릿하죠..
곤지암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귀신이 뭘까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쫄깃한 제 마음을 이완시키면서 이 귀신이라는 놈이 뭔데 내 마음을 이렇게 들었다놨다 하는 거야?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거죠.
‘곤지암 이런게 진짜 있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 정말 귀신을 만나면 죽을 수도 있는건가?‘
그런데 여기서 생각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귀신이라는 건 어쨌든 이미 한번 죽은 존재잖아? 어? 그럼 귀신이 있으면 사후세계도 있는 거네? 그럼 죽음을 지금처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잖아? 사후세계가 있으니까? 근데... 귀신이 없지?.. 아마도? 아직까지 귀신을 본 적은 없으니까...
아 차라리 귀신이 있으면 좋겠다….‘
당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정말 귀신이 무섭지 않게 된 겁니다. 정말로요.
그렇다고 해서 이때부터 무서운 영화를 봤을 때 무섭지 않게 되었느냐? 하면 스스로 실험해 본 결과 그렇지는 않더군요;
영화를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몰입이 되어 주인공과 혼연일체가 됩니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 영화에 몰입해서 주인공 해리포터의 분노나 희열을 내 감정같이 느끼게 되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공포 영화도 일단 몰입하게 되면 언제 어둠 속에서 귀신이 튀어나올지 몰라 심장 쫄깃해진 주인공과 내가 혼연일체가 됩니다; 결론은 무서운 영화는.. 지금도 무섭습니다. 귀신은 정말 안 무섭지만요;
생각해 보면 귀신이라는 존재, 또는 유령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역설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귀신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근원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귀신의 존재 그 자체는 '완전한 죽음' 그러니까 '사후세계가 없는 진정한 소멸로서의 죽음'을 결정적으로 반박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쫄깃하고 재밌는 공포영화를 볼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정말 귀신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