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갉아먹거나 남을 갉아먹거나(feat. 정신분석)

by 용사마

정신건강의학과에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대부분 자신의 마음이 아파서 오시는 분들이지만 간혹 어떤 분들은 남의 마음에 반복적으로 생채기를 내다보니 자꾸만 사회나 교우관계에서 밀려나다가, 어느 순간 '내게 뭔가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시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소위 '인격장애'라고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단 영역에 해당되는 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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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진단명은 아니지만 '화병'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고유한 질환이 있습니다. 증상은 오래전부터 참아온 화가 가슴속에 응어리져서 나이를 먹은 뒤로 어느 날부터인가 가슴에서부터 열이 올라오고 참을 수 없는 답답함 등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갑자기 '화병'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이 '화병'이라는 것이 앞서 말씀드린 '인격장애'와 발병하는 당사자의 성격적인 측면에서 서로 대척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화병'은 전형적으로 젊은 시절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했던 맏며느리가 나이가 지긋이 먹고 노인이 되어 발병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이나 고부관계를 생각하면 장래에는 많이 사라질 질환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종적이고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못하는 성격으로 시어머니의 핍박에 묵묵히 남편과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며 수십 년을 살아오신 분들에게서 많이 발병하는 것 같습니다.


진료실에 찾아오셔서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열이 올라온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럴 때 '혹시 젊어서부터 시집살이하면서 화가 나도 표현도 못하고 참느라 너무 힘드시지 않으셨나요?'라고 물으면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쳐 눈물부터 흘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들이 병원에 찾아오시는 것은 그동안 그렇게 자신을 괴롭게 했던 시어머니나 남편이 돌아가신 직후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내가 화를 표현해야 할 대상이 이제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니 억울함과 허망함이 크게 몰려들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화병'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는 저도 모르게 연민과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반대로 '인격장애'로 진단되는 분들은 자신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상대방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분들은 직장에서 납득할 수 없이 해고를 당하거나 친구들과의 절교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아픔'보다는 '의문' 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스스로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관계로부터 계속 밀려나다 보니 어렴풋이 나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는 의문을 가지고 병원에 내원하시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인격장애'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치료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을 걸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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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화병'은 오랫동안 나의 마음을 갉아먹어 생기는 병이고, '인격장애'는 반복적으로 남의 마음을 갉아먹은 결과 사회적 적응의 실패라는 대가를 얻게 되는 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치료입니다. '화병'을 앓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지지가 중요합니다. '지지정신치료'라고 부르는 지지적 면담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필요하면 우울증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인격장애'의 치료는 '화병'의 치료보다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화병'도 성격적 요인(자기주장을 못하고 남을 실망시키지 못하는)이 많이 작용하지만 '화병'은 꼭 그런 성격을 바꾸지 않아도 상당히 호전될 수 있는 반면에 '인격장애'는 자신의 성격적 요인을 고쳐야 근본적으로 병이 치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람의 성격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격은 당사자가 수십 년간 살아온 삶을 통해 단단히 형성된 것이기도 하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의 영향도 커서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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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인격장애'의 치료를 위해 '정신분석'이라는 치료기법을 사용합니다. 아마 정신분석이라는 단어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신 분들은 바로 '프로이트'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해서 융이나 아들러 같은 사람들이 다 정신분석을 발전시켜 온 분들입니다.


정신분석에 대해서는 쉽게 접하기가 어렵다 보니 막연하고 신비로운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을 레지던트 이후로는 해본 적이 없는 제가 정신분석이 무엇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적어보자면, 정신분석이라는 것은 '밖(사회)에서의 관계'를 지금 여기로(즉, 진료실로) 가져와서 재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인격장애'가 있는 분한테 '당신한테 이러이러한 성격적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를 잘 받아들여 성격을 고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직접 진료실에서 상담가와 당사자 사이에서 재현시켜, 문제점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한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의식적인' 교정 시도라 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실제로 발생시켜 은연중에 느끼게 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교정의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짐작되시겠지만 그래서 정신분석은 상담가의 정신적 소모가 매우 큰 치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격이라는 것은 무의식적 성향의 발로이기에 '무의식적' 상황에서의 교정이 더욱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직접 이야기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효과가 미미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직접 관찰하게 하는 것은 이른바 메타적인 관점을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정신분석'이 일종의 메타인지 치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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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과 인격장애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도 소중하고 '남의 마음'도 소중하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적당히 남도 배려하면서 내 마음도 소중히 하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항상 현실은 말만큼 쉽지는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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