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무대 공포, 수행 공포증)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회불안증이란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 내지 공포를 느끼는(이전에는 사회공포증 으로 불렸습니다)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심한 불안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사회적 상황을 피하려고 합니다. 대인기피도 결국은 일종의 사회불안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회불안증이라는 게 많이 이상한 것일까요? 여러분은 사회불안을 느껴본 적이 없으신가요?
다들 수업시간에 발표(프레젠테이션)같은 것을 할 때 한 번정도는 불안함을 느껴보신 적이 있지 않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다른 것은 다 고등학교 때보다 좋았는데(늦잠도 잘 수 있고, 수업도 골라들을 수 있고..), 고등학교 때는 없었던 발표 수업 때문에 속 앓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할 때의 그 긴장감, 떨림, 그게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남중 남고를 다녀서 강의실에 여성들이 더 많은 상황이 저를 더 긴장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대학시절에 왠만하면 발표가 없는 수업을 찾아서 수강신청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회적 상황이라는 것은 발표 같은 것 말고도 다양한 형태들이 또 있습니다. 회의라든지, 아니면 3대3 미팅 같은 것도 사회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상황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약간의 긴장감 및 불안을 느낍니다.(물론 조금의 불안이나 긴장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상황이 즐겁고 기대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사회적 상황에서 긴장을 하게 되는걸까요? 제가 다른 불안관련 글에서도 기술했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입니다. 지금은 동물임을 거의 못 느끼고 살아가지만 선사시대 우리 선조의 삶은 동물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사냥을 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들판의 나무들에서 열매를 따먹고, 동굴 같은 곳에 숨어서 다른 동물들로부터 안전을 지키고.. 동물로 따지면 무리지어 생활하는 포유류 종의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사실 동물에게는 꼭 다른 종들만이 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양의 적이 사자인 것은 당연하지만 사자의 적이 사자일 수도 있습니다. 식구(食口)가 아닌 무리라면 같은 사자일지라도 서로 먹이을 놓고 생사를 건 싸움을 하는 게 드문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그런 동물적 습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식구(食口)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해 본능적인 경계심을 갖고, 그들 앞에 마주섰을 때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회불안 혹은 사회공포는 우리가 본래 동물임을 다시금 기억하게 해주는 본능적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으로서 우리 개인은 발표 수업 상황에서 내 앞에 있는 청중들이 나의 '적'이 아님을 '의식적'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동물로서의 유전자는 식구가 아닌 많은 '타자'들 앞에서 무의식으로 교감신경을 항진시켜 언제든 fight or flight(싸우거나 도망치거나)의 자세를 취하게 합니다. 현대에서 많이 쓸모없어진 기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예를 들어 지진이 일어나서 얼른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할 때는 교감신경 항진을 통해 재빨리 이동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일 것입니다)에서는 우리 몸을 지켜줄 수 있는 동물로서의 디폴트 옵션인 것입니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 우리 인간이 정신과적인 증상으로 고통을 겪은 것은 결국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 때문이다 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사회불안증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식적으로는 강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동물적, 무의식으로는 그렇게 인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신체적 반응(맥박수 증가, 떨림, 소화 지연 등)은 나의 의식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발표를 할 때 '긴장하지 말자. 긴장할 필요가 없다!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지만 이런 의식은 동물적 본능이 관장하는 무의식을 이길 수 없습니다.
누구나 어느정도의 사회불안은 느낄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적 경험을 통해 이런 불안증상이 완화되는 것이 보통이기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하며 지나갑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적 상황(발표, 회의 등)이 더욱 많아지고, 또 개인적인 유전적, 환경적 차이로 인해 각자가 느끼는 사회불안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약간의 불안을 느끼는 사람에서부터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까지) 누군가에게 사회불안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심각한 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는 꼭 필요합니다. 요즘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지기는 했습니다만 아직도 정신과라고 하면 뭔가 '미쳤다.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사회불안으로 큰 고통을 느끼면서도 정신과 병원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해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분들이 조금만 치료의 도움을 받으면 어려움 없이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술이나 다른 약물로 사회불안을 회피하려 하다가 결국은 삶 자체가 피폐해 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사회불안은 어떤 사람들에게서 더 잘 생기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역시 유전자의 영향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사회불안도 다른 불안장애와 마찬가지로 세로토닌 수송체 유전자(5-HTTLPR)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세로토닌 수송체 유전자의 allele(대립유전자)은 S형과 L형이 있는데 S형 대립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더욱 사회불안 및 불안장애의 발생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대부분의 질환들이 그렇듯(암, 당뇨, 고혈압 등) 사회불안증의 발생에는 유전자 뿐만 아니라 환경적 요인도 상당히 작용하게 됩니다. 특히 사회적 상황과 관련된 크고 작은 정신적 트라우마는(예를 들어 발표 중에 겪은 실수로 심하게 창피함을 느꼈다든지) 사회불안증의 발병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 성격적으로는 위험회피 성향이 높은 사람일 수록, 그리고 완벽추구적 경향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회불안증의 발생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사회불안증의 유병율이 동양보다 서양에서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서양 주요국의 사회불안증 유병률이 대략 6~12% 사이인 것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한국, 중국, 대만, 일본)의 사회불안증 유병률은 대략 0.6~2%대 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평소 경험적으로 느껴왔던 것들(서양 사람들은 토론 시간에 자기의 의견 개진도 더 잘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잘 이야기 하는 등의 모습들)과는 정반대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우리의 일반적 경험처럼 자기보고식 척도에 따른 사회불안의 정도는 일반적으로 동양사람들이 서양사람들보다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사회불안증의 유병률은 서양에서 동양보다 훨씬 더 높게 보고되는 것일까요?
학자들은 이에 대해 서양과 동양의 개인주의, 집단주의 문화의 차이가 그 이유라고 말합니다. 동양의 문화처럼 집단을 우선시 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상황, 즉 집단 내에서 나를 드러내는 상황(즉, 발표를 한다든지 수행을 하는 것 등)을 일반적으로 부끄러움 또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즉, 개인으로서의 나는 사회적 상황에서 집단의 시선을 상당히 의식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대로 서양과 같은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보통은 타인의 시선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즉 사회적 상황에서 무엇을 수행할 때 집단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으로 여김) 오히려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사람은 동양에서보다 훨씬 더 병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서양에서는 작은 사회불안 증상도 질환으로 여겨져 진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동양에서는 이런 사회적 불안(내지는 부끄러움)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에 질환으로까지 여겨지는 일이 좀 더 드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불안증은 사실 불안장애들 중에서도 좀처럼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질환 축에 속합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사회불안증은 다른 불안증들 보다도 더 그 사람의 내재적 성향(혹은 성격)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증상만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언제든 다시 재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좋아진 듯 싶어도 또 다시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이 올라오기에 치유(cure)에 도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럼 어떤 성향의 사람들에서 더 사회불안증이 발생하기 쉬울까요?
우선적으로 말할 수 있는 타입은 바로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들'입니다.
어? 그럼 그냥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것 아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과 같은 개인의 성향은 어린시절부터 오랜 기간 형성되어 온 것이기에 성인이 된 후에 이를 고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미 나의 본능과도 같은 것으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것을 '자기초점화 주의'라고 합니다. '자기초점화 주의'라는 것은 어떤 사회적 상황들에서 타인의 시선들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연단에서 발표하는 사람의 신체적 신호들, 몸짓 하나하나에 일일이 깊은 관심을 갖고 듣는 사람이 보통 전체 청중의 몇 퍼센트나 될까요?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10명에 1명만 된다해도 많은 편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자기초점화'가 심한 사람들은 발표를 하는 매순간 '사람들이 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알아채면 어떡하지?','내가 두근거려하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신체적 증상에 대한 예민함은 더 높아지고 불안감은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또 한 가지 사회불안에 취약한 개인적 성향은 바로 완벽추구적 경향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단순히 의식하는 것을 넘어서 타인에게 '결점이 없는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마음 속에 안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두근거리는 것'이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신체적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기술 했듯이 동물이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이런 교감신경의 항진과 관련된 신호들이 이들에게는 '자기 결점'의 증거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가 보내는 긴장의 신호들에 민감하게 반응해 더욱 불안감이 상승하게 됩니다. 결과는 불안과 신체신호가 서로를 강화시키는 악순환입니다.
사회불안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경한 정도의 사회불안증의 경우 '노출치료'만으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회적 상황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데 유독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만 심하게 불안해지는 이른바 '무대공포증(굳이 진단명으로 말하면 social anxiety disorder, performance only type)'의 경우, 반복된 노출(발표 수행 등)은 점차 유사한 상황에 대한 불안의 탈감작(desensitization)을 일으켜 증상의 호전으로 연결됩니다.
다만 이런 '노출 치료'로도 증상의 호전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노출' 자체가 트라우마로 작용해 오히려 불안이 악화되기도 합니다. 원래라면 발표와 같은 수행을 반복하면서 '아 막상 별거 아니구나, 사람들이 내가 긴장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구나'라고 느껴야 하지만 부정적인 주관적 사고의 경향이 너무 강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아, 사람들이 내가 발표할 때마다 비웃는 게 느껴져, 너무 수치스러워' 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회불안의 정도가 상당히 심한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뉴런의 시냅스에서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는 약물치료가 필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회불안장애를 포함한 불안장애들은 대부분 세로토닌 수송체 유전자의 S타입 대립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시냅스에서 세로토닌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이 있습니다. 약물치료를 통해 이부분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함에 대한 기본적인 역치를 높여 좀 더 치료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약물치료는 특히 '무대공포증'에 한정된 사회불안증에서 높은 효과를 나타내는데요, 바로 propranolol이라는 약물을 복용하는 것입니다. 베타차단제로 분류되는 propranolol은 심박동과 같은 교감신경의 항진을 안정적으로 통제해주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그 결과 불안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해도 두근거림 이라는 신체증상을 잡아줘 결과적으로 수행불안을 훨씬 덜 느끼게 해줍니다.
사회불안증은 재발 가능성이 높고 치료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질환이지만, 적절한 인지행동치료와 함께 올바르고 꾸준한 약물치료가 병행된다면 충분히 잘 다스릴수 있는 질환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회불안증을 방치하다가 알콜중독과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이환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사회불안증으로 고통받는 모든 분들이 꼭 치료적 도움을 통해 구원받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회불안증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