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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전을 도전하자 Mar 28. 2023

대단하지 않지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치열한 현대인들에게.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지난 3년간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보면 딱히 대단하진 않았다. 막상 요리를 열심히 했지만 내세울 요리가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자책으로 이어지거나 극단적인 우울증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공허함'이라는 감정이 마음 깊게 들어 있는 듯하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지만 정작 나에게는 열심히 관심을 못 갖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면 좋겠다.



유퀴즈에 나온 예일대 정신과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Tvn_유퀴즈 온더 블럭 177화 中

"대한민국 사람들은 열심히 살면서 자책을 너무 많이 한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과 동시에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시청 시간이 늘어났고, 그에 따른 자기계발 컨텐츠의 인기가 급상승했다고 분석된다. 처음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재택근무라는 시간을 통해 쉼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대로는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심리적인 증상은 자기계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듯하다.


 자기계발은 달콤한 사탕과 같다. 부족한 나를 자기계발을 통해 더 나은 나로 바꿀 수 있는 기회와도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자기계발 영상 컨텐츠를 몰아 보고, 관련 서적을 30권을 접하면서 세상에 펼쳐진 기회들을 잡으러 애를 썼다. 운동선수 중에 상위 0.1% 미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선수들이고 나머지는 스폿라이트를 펼쳐지지 못한 것처럼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하지만 자기계발을 시작한 계기는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시작한 나는 좌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목표를 최대한 세부적으로 잡고 당장 행동해라. 집에서 나가서 기회를 창출해라. 생각하기 전에 몸을 먼저 단련해라. 전자책을 쓰고, 너만의 컨텐츠로 파이프라인을 넓혀라."


 자기계발 컨텐츠를 접하면 이런 내용들이 혹은 비슷한 내용들이 나온다. 깊게 들여다 보고, 말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면 정말 좋은 문장들이지만 나에게는 그러지 못한 나에게 다그치는 기분이 들었다. 세부적으로 목표를 잡아 행동하는 것에 딱히 흥미가 없는 즉흥적인 나에게,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나에게, 유리몸으로 부상을 자주 당하는 나에게, 수익화를 창출하는 것이 어려운 나에게는 이런 말들이 너무 지치게 했다.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집에 나가지 않아도, 몸을 단련하지 않아도, 다양한 수익화를 만들지 않아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수많은 경험들을 쌓기 위해 블로그, 코딩, 대외활동, 서포터즈, 인스타, 유튜브 등을 해봤지만 내가 생각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대단하지 않지만 고생했다고. 남들에게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당신이 했던 노력들과 거센 저항이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전해졌다고. 막연히 위로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한 자신을 어루어만져줄 의무가 있다. 유전적으로 나약하기에. 때로는 자기 객관화를 통해 따끔한 성찰을 해도 좋다. 하지만 그것이 자책으로 이어지고, 자신을 채찍질만 하는 걸로 연결된다면 우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열심히 살다 보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도 자주 하게 된다. 특히 20대 초중반이라면.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지. 앞으로 내가 어떤 직업을 하면서 살아야지. 나는 누구지. 어떤 것을 전문화시켜야 하지. 나를 포함하여 이런 질문들을 가만히 앉아서 하는 사람들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고 싶다.



 삶의 의미를 열심히 찾는 나에게 위로가 된 말은 삶의 의미는 그저 내가 묻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에게 묻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나온 이 말은 나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소울>에서 잘 해석을 해준다. 삶의 의미를 이루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다 보면 생기는 것이라고. 정리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열심히 찾는 삶의 의미를 그저 앉아서 생각만 하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삶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고 열심히 살다 보면 삶이 알아서 대답을 해준다는 의미이다.




 영화 <소울>을 보면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자신이 그렇게 꿈꾸던 재즈의 공연을 마치고, 엄청난 공허함을 느끼는 장면이 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다가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보다 그 목표만을 목적으로 열심히 산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세일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목적지에만 중심을 두는 '키네시스', 목적의 완성보다는 실현하는 과정을 즐기는 '에네르게이아'가 언급된다. '조 가드너'는 자신이 그동안 인생을 '키네시스'적인 인생을 살았지만, '22'라는 영혼과의 만남으로 '에네르게이아'의 인생 철학을 지니게 된다. 



 나는 영화와 책들을 통해서 깨달았다. 내가 왜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절망감, 우울감을 느꼈는지. 정의할 수 없는 성공,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나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과정은 그저 목표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즐길 수 없는 존재로 본 것이다. 내가 만약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며, 내가 이루고 싶던 돈과 명예를 얻었더라도 '조 가드너'처럼 공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인생에 대한 관점을 바꿀 필요를 느꼈다.



 "대단하지 않지만 즐겁습니다."



지금 현재를 즐기며, 이 순간들을 춤추며 살아가는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저 매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함이라기보다는 현재를 위해 열심히 그저 즐기며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완전함을 느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명언 "Carpe Diem". 을 제대로 이해한 듯하다. 나의 깨달음이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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