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센터
나는 기존과 다른 생활에 힘들어했다. 휴학을 하고, 나만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다가 군복무라는 시간에 맞추어서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했다. 자유로운 영혼이 마치 새장 안에 갇힌 기분을 받았다. 그래도 나는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영양제도 챙겨 먹고, 새로운 취미 생활도 해보고, 수면 패턴도 신경 써보았지만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갈수록 더 심해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난 부정했다. 마치 <변신>의 주인공처럼 벌레가 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현실 부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늘 밝아야 하고, 행복할 줄만 알았던 사람인데 내가 우울감에 빠져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과연 올까. 스멀스멀 오고야 말았다.
심리 상담 센터에 연락해서 상담 신청을 했다. 결국 벌레가 된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기분이 묘했다. 이게 과연 맞는 행동일까. 내가 정말 상담받을 정도의 우울감과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일까. 어쩌면 엄청 더 힘들어야만 상담을 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벌레가 되었지만 몸을 제외하고 머리는 아직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2주 뒤에 상담을 받기로 했고, 나는 다시 일상생활을 했다. 상담 신청을 했다고 해서 그동안 정신 병원에 갇힌 사람처럼 지낼 수는 없지 아니한가. 나름대로 나의 방식대로 열심히 2주라는 시간을 향해 달렸다.
1주가 지나면서 정신이 맑아졌다. 스트레스에 해방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보다는 나의 상태를 파악했다는 것에 대해서 안정감을 얻었다랄까. 이유도 모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감정에 대한 고통은 마치 <설국열차>에서 긴 터널에 들어가 눈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싸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신 상담 신청을 했다는 것은 현재 내 상태가 어떤 상태임을 짐작했다는 것이기에 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눈앞이 보이지 않던 싸움에서 조금이나마 상대가 보이는 싸움으로 전향되었을 때는 상황이 역전된다. 드디어 나의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담 신청 1주가 남은 시점, 나만의 싸움을 시작하다.
전문가의 조언을 얻지 않고, 그저 나만의 싸움을 시작해 보았다. 절망감과 우울감, 분노, 짜증, 질투심이라는 적에게 감사함이라는 주먹질을 해보았다. 내가 이전에 누렸던 자유롭고 행복한 시절과는 다른 환경 때문에 힘든 것은 맞지만 다른 시선으로 비교를 또 해보자면 나는 엄청난 좋은 환경에 살고 있지 아니한가. 지금에 감사하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바꾸자라는 돌려차기를 시전 했다. 그렇게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쓰러지고, 희망이라는 챔피언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전국대전, 전 세계 챔피언십 대회가 아닌 그저 한 시골의 고등학교 대회 수준의 우승이었다. 아무리 기뻐해도 큰 변화는 가져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싸움에서 얻은 얇은 상장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이 되었다.
상담을 취소하다.
신청했던 상담 센터에 연락해서 나의 예약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며 다음에 힘들 때 다시 한번 찾아뵙고 싶다고 정중하게 취소를 했다. 전화를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뿌듯했던 말 한마디는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난 나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을 해도 싸움을 이길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보이지 않고, 맞기만 한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상대가 보이는 싸움으로 바꿀 수 있는 역전의 발판은 바로 자기 객관화인 듯하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무언가를 크게 이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오늘의 나의 감정과 기분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더 밝은 내일을 가져올 수 있는 큰 기회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감정을 묵인하지 말고, 오히려 꺼내보는 건 어떠한가? 그것만으로도 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