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는 차가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내 곁에 계실 땐, 아이들도 어렸고 생활도 팍팍해서
한 번 마음 놓고 구경 한번 시켜드리지 못했다.
섬마을에 살던 엄마는 바다를 앞에 두고, 뒷산을 등지며
푸른 초원 위에 자리한 집에서 사셨다.
그렇게 넉넉한 자연을 품고 지내시던 분이
도시로 올라와서는, 거실 딸린 조그마한 방에 갇혀
좁은 세상 속에서 오직 막내딸만 기다리며 6년을 보내셨다.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에도
엄마 생각이 밀려온다.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딜 가든, 입버릇처럼 말하게 되는 말이 있다.
“우리 엄마, 아버지 여기 한번 모시고 왔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그 말 속엔 늘 아쉬움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부모님은 떠나시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엄마의 건강이 점점 나빠질 무렵,
우리는 살던 집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그리고 코로나로 면회조차 어려워지며, 엄마는 더 멀어져 가셨다.
우리는 나름의 효도를 한다고 했지만
돌아갈 수 없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애원하시던 아버지를
차마 모시지 못했던 그날,
나는 아버지의 등을 뒤로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내 마음 한켠을 짓누른다.
아버지는 살아계신 동안
자신의 다리가 늙고 굳은 줄도 모르시고
요양병원만 나가면 잘 걸을 수 있다며 확신하셨다.
그 말이, 그 믿음이 떠오를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정도면 너는 잘한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효녀다.
지금 살아 돌아오신다 해도
특별히 더 잘할 자신도 없으면서,
나는 또 후회를 한다.
나는 오늘도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아쉬움’이라는 도장을 한 번씩 찍고 온다.
그 도장은, 엄마라는 이름 앞에
아직도 나를 멈춰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