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노래

by 자그노기

아버지의 말이라면, 이상하게도 너무 듣기 싫었다. 내 기억 속에는 오로지 엄마만이 또렷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언제부터인가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 아버지 싫어해. 아버지도 나 싫어할거야.” 그렇게 확신하듯 가족들에게 말한 적도 있다. 성인이된 이후에도 나는 아버지의 말을 건성으로 듣기 일쑤였고, 감정의 골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어릴적 깊은 새벽 잠을 깨우던 아버지의 전쟁이야기는 내게 상처로 남았고 그 기억 하나만으로 아버지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살아가면서 아버지를 이해해 갔다. 여전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지만,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내 시선도 달라졌다. 늙고 기력이 약해져도 언제나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은 내 마음 속에 오래 자리했던 오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문득 깨달았다. 아버지와 나는 참 많이 닮았다. 둘다 무뚝뚝하고 고집이셌다. 하지만 마음이 열리자, 그 안에 흐르던 진심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단 한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적이 없었다. 그 사랑은 늘 있었지만, 내 마음에 박힌 가시 때문에 그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날 나는 아버지께 말을 건넸다. “아버지, 나 어릴적 아침마다 친구분에게 들려주시던 전쟁 이야기, 저한태 들려주세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예전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셨고, 기억마저 희미해져 제대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분이셨구나. 죽고 죽이는 처참한 전쟁 속에서 살아 돌아온 그날까지, 아버지는 홀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품고 살아오셨을까.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내가 잠들어 있던 새벽, 아버지가 들려주던 생생한 전투 이야기는, 사실 전설처럼 함께 싸운 전우들의 이야기였고, 그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노래이자 기억의 조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가 내 잠을 깬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밀어내 버렸다. 작년,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나셨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부하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던, 용감한 모습 그대로. 비록 전투중 부상으로 후방으로 돌아오셨지만, 싸움은 치열했고, 그 용기는 명백했다. 아버지는 무공 훈장을 받으셨고, 결국 대전 현충원에 안장 되셨다. 그곳 납골당 주변에는 대부분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의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계신다. 이제 우리 자녀들은 매년,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소풍을 간다. 햇빛아래 바람 속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아버지의 노래. 그 노래가 이제야, 내 마음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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