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상자 하나

by 자그노기

점심시간, 잠깐 집에 들렀다 대문 앞에 놓인 큼직한 택배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묵직한 절인 배추라도 들어 있을 법한 크기다. 누가 이런 큰 박스를 보냈을까 싶어 주소를 살펴보니, 전남 장흥에서 온 큰언니 이름이 적혀 있다.


낑낑대며 집 안으로 들여놓고 조심스레 상자 위를 살짝 열어보니, 큼직한 햇감자가 수북하다. 그 순간 고양이들이 달려와 박스 위에 폴짝 올라타 장난을 친다. 나는 얼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다. 마음은 바빴지만, 언니 목소리를 듣기 전에는 이 감자들을 꺼내기 싫었다. 그렇게 박스는 거실 한쪽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사실 아들이 감자를 참 좋아해서 한 번 주문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반가운 손님처럼 감자가 먼저 찾아왔다. 이 감자는 아버지도 좋아하시고, 남편도 좋아하고, 아들도 좋아한다. 어떻게 이렇게 셋이 같은 음식을 좋아할까. 신기하면서도 따뜻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짠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직도 논밭을 떠나지 못하고, 힘든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살아가는 언니가 떠올랐다. 반가움과 미안함, 애틋함이 뒤섞인 감정에 나는 감자를 꺼내지도 못한 채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언니와 통화가 닿았다.

“우리 제낭, 맛나게 묵어라. 갓 캐서 보낸 거라, 아주 퍼근허니 맛있을 거다.”

언니는 언제나처럼 푸근한 목소리로 안부를 전했다.


그제야 나는 마음을 놓고 감자 껍질에 칼집을 내어 찜기에 올렸다. 퍼근퍼근, 분이 흐르는 갓 찐 감자를 나부터 먼저 하나 맛봤다. 따뜻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언니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감자를 씹으며, 이걸로 무슨 요리를 해볼까 하는 상상을 시작했다. 부드러운 감자샐러드도 좋고, 짭조름한 감자조림도 좋겠다. 그렇게 감자를 따라 요리의 여행을 하다 보니, 더위도 잊었다.


어느새 창밖엔 비가 그치고, 나무 사이로 새소리가 들려온다. 감자 한 상자, 그 안에 담긴 언니의 손길과 마음 덕분에 오늘도 나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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