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친구들 중엔 유독 부모를 일찍 여읜 아이들이 많았다. 이유는 대부분 병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흙더미 앞에서 ”엄마“하고 목놓아 부르던 그 아이들의 울음. 사랑이라는걸 제대로 받기도 전에, 부모를 떠나 보내야 했던 그 현실이 어린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우리 엄마는 절대 죽지 않게 해주세요.“ 그 기도는 오롯이 내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엄마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무엇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눈을 떴을때, 내 옆에 엄마가 있는것. 그게 전부였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엄마가 돌아올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말라버릴 때까지. 꺽꺽 숨이 넘어가도록 울던 나는 엄마 없이는 숨쉴 수 조차 없었다. 형제 자매가 많았지만, 내게 엄마는 ‘내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절대 죽으면 안되는 존재였다. 나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도 묻지 않았다.
스므살이 되던해, 나는 고향을 떠났다. 엄마의 품을 벗어나 언니들이 사는 도시로 향했다. 그 시절 나는 엄마 없이 살아내야 했고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다. 그렇게 내 삶의 2막이 열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이제 그 아이들 중 하나인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부모가 되어 보니 자식에게 못한 순간들만 떠오른다. 부족했던 나, 시행착오 많았던 나. 성인이된 아이들에게 되려 훈계를 듣는 지금, 부모라는 자리가 늘 완전할 수 없음을 배운다.
이제 나는 육십을 바라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젠 이 세상에 엄마가 없다. 엄마는 나를 이렇게 키워 놓고, 납골당 조그마한 뼛가루와 영정 사진 하나만 남기고 떠나셨다. 허전하고 아프다. 그러나 한편으로 감사하다. 내가 든든히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오래 곁에 있어준 사람. 그 이름이 바로 나의 엄마였다.
형제 자매들은 각자 엄마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같은 엄마였지만, 모두 다른 엄마를 가슴에 품고 있다. 하지만 내게 엄마는 ”오래 살아준 사람“이었다. 무엇을 해주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래 오래 곁에 있어준 시간이 곧 사랑이었다.
엄마의 마지막 인생은 내 몫이었다. 막내였던 내가 엄마의 말벗이 되었고, 간병인이 되었고, 마지막까지 함께한 딸이 되었다. 걷지 못하고 기억조차 흐려진 엄마를 돌보며, 나는 처음으로 ’늙음’을 배웠다. 그리고 ‘존중’이라는 것을 새로이 배웠다. 아무리 몸이 불편해져도, 생각은 여전히 그 사람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인간은 그렇게 단단하고, 또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요즘 나는 자주 엄마를 떠올린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이름. ‘엄마’ 아니 ‘친정 엄마!’ 나는 곧 누군가의 친정 엄마가 된다. 결혼을 앞둔 딸이 “엄마, 나도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묻는 날이 오겠지. 그 물음 앞에서, 나는 가만히 되 묻는다. ”나는 우리 엄마 같은 엄마였을까?“
내 안에 아직도 살아 있는 엄마를 가끔 꺼내어 그리워 한다. 예전처럼 많이 울지는 않는다.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 뭉근하게 데워지는 추억. 친정 엄마, 그 이름은 내게 가장 귀한 이름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딸에게 그런 이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