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이제야 본 것들

by 자그노기

나란히 앉아 일하던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경 바뀌었네?”


안경을 바꾼 지가 언젠데요.

“검은 안경테 아니었어?”

그건 40대 때 쓰던 거라고 대답했다.


요즘 몸이 안 좋아서 그런지, 그녀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며칠 전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머리 잘랐네?”

자른 지도 한참 지났는데 말이다. 긴 머리가 잘 어울렸다고 했지만, 그건 결혼식 때문에 잠시 길렀던 머리였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짧은 커트 머리에 아담한 체구, 반바지를 야무지게 입는 사람이었다. 일 잘하는 사람 특유의 단단한 인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어느새 30년이 되었다.


모두 퇴근한 뒤에도 문을 잠그고 자정까지 혼자 남아 일하던 사람. 밥 먹는 것조차 잊고 일하는 모습에, 나는 그녀를 지나칠 정도의 일 중독자라고 생각했다. 급한 성격, 직선적인 말투, 용서 없는 판단. 그녀의 눈빛은 마치 군대 교관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일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며 혐오까지 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늘 궁금했다.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지독한 일벌레로 만들었을까.


그녀는 사람을 자세히 보지 않는 버릇이 있다. 일에 몰두하느라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지 않고 인사하고, 대충 스쳐본다. 주말에 남편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봤다고 했을 때는 나도 놀랐다. 주름진 얼굴, 늙고 약해진 남편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남편을 대한다고 했다. 몸이 아프고 짜증이 날 때는 남편이 꼴 보기 싫고, 몸이 괜찮아지면 안쓰럽고 불쌍해진다고. 짜증 섞인 말과 투정을 모두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그렇게 했다면 받아주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그녀 역시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 우울감을 겪고 있다. 젊은 시절 사업에 실패했고, 남은 돈으로 월급을 주다 결국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했다.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두고 월급쟁이로 살던 서러운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사업은 몸이 부서져라 지켜야 할 삶의 마지막 보루였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그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지금은 살 만한 여유가 생겼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피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녀의 엉뚱하고 늦은 관심에 ‘혹시 많이 아픈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누군가의 달라진 점을 말해준다는 것이, 그게 비록 어색하고 엉뚱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이 짠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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