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와 연필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잘 맞는 부부와 같다. 서로의 존재가 있어야 제 역할을 다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이들에게 학용품 선물은 반갑지 않다. 선물이라는 말 속에 ‘공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실망감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아도 일그러진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학습이 시작되면 흔해 빠진 연필은 늘 뾰족하게 깎인다. 끝이 뭉툭해지는 것을 못 견디는 아이들 탓에 연필깎이 속에 심이 끼어 고장 나는 일도 잦다. 이런 수고는 반복된다.
글자가 틀리면 망설임 없이 지우개를 꺼낸다. 네모난 직사각형의 지우개는 처음엔 맑고 깨끗한 신사처럼 등장하지만, 곧 흑연을 뒤집어쓰고 손에 묻어나며 옷을 입는다. 노트에 박힌 흑심을 지우려 안간힘을 써도 흔적은 남는다. 하지만 말랑한 몸은 놀랍도록 잘 닦여, 때를 뱉어내듯 술술 밀려난다.
아이들은 지우개를 한 번 쓰고 아무 데나 던진다. 숫자를 잘못 쓸 때마다 다시 찾는 지우개는 어느새 구석으로 숨어 있다. 연필심은 깎이고 또 깎여 점점 짧아지고, 지우개 역시 덩달아 작아진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사이 둘의 키는 반으로 줄어든다. 흔하다는 이유로 반토막 난 이들은 더 이상 인기를 얻지 못한다. 장난기 많은 아이들 손에 쥐어지면 부러지고 던져지다 연필꽂이 안으로 숨어버린다. 지우개도 흑연색 옷을 입은 채 갈라지고 일그러져 같은 곳으로 몸을 숨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용품은 귀한 물건이었다. 품질은 좋지 않았지만, 연필심에 침을 발라 진하게 써보고, 지우개가 없어 침으로 얼른 문질러 지우던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풍족함은 잠시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의 어린 시절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연필 냄새다.
그 향기는 나를 처음 종이 노트를 만났던 날로, 향연필의 세계로 데려간다.
가장 소중하다 믿으며 함께했지만, 달고 닳아 익숙해지면
어느새 값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들.
연필과 지우개처럼 늘 곁에 있으면서도
익숙함에 가려 서로의 가치를 잊은 부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한 갈등 속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