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떼창에 멈춰버린 몰입

by 자그노기

기호 1번 OOO.

건너편 초등학교에서 아침마다 들려오는 목소리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의 떼창이 창문을 타고 흘러왔지만, 나는 그저 지나가는 소음쯤으로 여기며 무심히 넘겼다.


오늘도 식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런데 문장이 눈앞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글자는 읽히지 않고, 아이들의 외침만 또렷하게 귓바퀴에 걸렸다. 마치 군대의 구령처럼 일정한 박자로 쏟아지는 소리에 마음이 조금씩 어지러워졌다.


정신을 차려보려 글을 다시 더듬었지만, 뇌는 단단히 문을 닫은 듯했다. 소리와 집중이 뒤엉키며 마음 한켠이 서서히 지쳐갔다. 잠깐, 이것은 약한 고문 같기도 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나는 책 속에 깊이 잠겨 있었다. 한 생명체처럼 이야기의 결 안으로 빨려 들어가, 현실의 소란을 잊고 살아 있었다. 그런데 똑같은 책을 들고 있으면서도 오늘은 이토록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조금 화가 났다.


그래도 신기하게, 등교시간 8시 55분이 되자 소리는 뚝 끊겼다. 아이들이 외치던 ‘기호 1번 ㅇㅇㅇ은 아마도 전교회장 선거 때문이었겠지. 그들의 목소리가 힘을 받을수록 내 안의 생기는 점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결국 책을 덮었다. 며칠 전의 그 기적 같은 몰입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필요한 것은 잠시의 전환일지도 모른다.

혹은, 단순히 잠이 부족했던 하루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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