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지인에게 전화벨이 울렸다. 동호회 점심 약속이 있던 모양이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목소리였다. 부인의 눈치를 살피는 듯 “시간 맞춰서 갈게요”라고 말했지만, 그 뒤로도 전화는 몇 번이나 더 울렸다.
전화기 너머에선 이쪽 사정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인은 부인의 눈치와 동호회의 재촉 사이에서 서늘한 심리적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공기마저 조금 무거워질 즈음, 부인의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 놔두고 가지…”
혼잣말인지 투덜거림인지 모를 그 한마디에 지인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곧 부인의 반격이 시작됐다.
“30분만 더 작업하고 가면 빨리 끝날 텐데…”
길게 내쉰 한숨이 무거운 실내 분위기를 눌러버렸다. 그 울림이 성난 파도 같았다.
나는 속으로 ‘아까는 가라고 해놓고 이건 또 무슨 말이지?’ 하고 반박하면서도 부인의 넋두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부인은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더니 결국 하루 전에 시술까지 받았다고 했다. 아플 때는 누가 가까이 있는 것조차 힘겨운 법인데, 오늘은 나오지 말라는 지인의 말을 굳이 뿌리치고 따라 나온 이유도 이제야 이해됐다.
평소 지인의 건강을 누구보다 챙기고,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우울감이 올라오거나 몸이 극도로 아플 때는 지인마저 미워지고 보기 싫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부인의 그런 마음을 조금만 헤아렸다면 좋았을 텐데, 지인은 단지 눈치만 보고 ‘왜 또 화를 낼까’ 하고 불만을 품고 있으니 보는 내가 더 답답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부인에 대한 불만을 자주 털어놓곤 했다.
워낙 무뚝뚝하고 직선적인 사람이라 사랑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우리는 너무 안 맞아요”라며 단념한 듯 말한 적도 있다.
부인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하고, 지인은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해줬으면’ 하는 마음.
사실 우리 모두 이런 문제 앞에 서 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기만 할 뿐 마음은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싸우며 성장한다지만,
어른은 싸우며 늙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