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도 말이 될 때

by 자그노기

여느 날처럼 저녁 7시가 되면 아이들이 귀가를 한다. 차량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일주일에 세 번은 걸어간다. 버스 정류장으로 치면 한 정거장 반 남짓, 부담 없이 걷기 좋은 거리다. 삼삼오오 모여 깔깔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아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집 앞까지 동행한다. 그들 틈에 섞여 걷는 동안만큼은 나도 나를 잊고 아이들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책가방을 단단히 붙잡은 채 앞서 뛰어가는 아이, 언니의 작은 동작 하나에도 미친 듯이 웃어대는 동생. 잇몸은 이미 입 밖으로 한참 나와 있다.


그 무리 속에서 한 아이는 섞이지 못한 채 말없이 걷는다. 먼저 도착한 친구를 집에 들여보내고 나니, 두 번째 아이가 혼자 가겠다고 한다.

“혼자 가는 건 위험해. 데려다줄게.”


몇 걸음 걷는 사이, 그 아이는 어느새 인사를 휙 던지고 바삐 뛰어가 버렸다. 돌아오는 길, 아파트 입구에서 반짝이는 눈사람 트리에 발이 묶였다. 함께 갔던 아이를 모델 삼아 사진을 찍느라 잠시 시간을 보냈다.


아파트 화단을 돌아서는데, 먼저 집에 갔던 아이가 다시 밖에 나와 있었다. 조금 전 뛰어 들어갔던 아이도 되돌아오다 우리와 마주칠 뻔하자 뒷걸음질 치며 숨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른 척하고 밖에 나와 있던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아무 말도 묻지 않았는데, 왜 밖에 나와 있는지에 대한 변명이 쏟아졌다. 내가 떠난 뒤 둘이 다시 만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사실은 묻지 않아도 아이들의 행동이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행동한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내가 지나칠 정도로 자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간 뒤에도 다시 나와 오랫동안 밖에 머무르곤 했다.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끝이 없었다.


그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그들이 숨기려는 행동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면, 아이들은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 비밀이 생기고, 거짓말이 따라오고, 행동은 어색해진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 마음도 덩달아 요동쳤고, 나는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침묵하는 것 역시 하나의 메시지일지 모른다고.

그럼에도 아이들이 굳이 속이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건,

아직은 내 말을 신경 쓰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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