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대신 기다리는 일

by 자그노기

한 아이가 내 주변을 맴돌며 계속해서 관심을 끌고 있었다.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에게도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 할 말 있어?”


줄곧 활기찼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운 빠진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지만, 그 다음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내 반응에 움츠렸던 마음의 방향을 틀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드게임하고 싶어요.”


다른 친구들이 오기 전까지, 그의 놀이 친구는 나다.


전날, 그는 모든 규칙을 무너뜨리며 나를 실망시켰다.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였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였고, 가시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발길질이 잦았다. 아직 1학년이지만 당차고 날렵한 몸놀림은 주변 아이들에게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다.


지금의 그는 수영선수다. 시합이 있을 때마다 우승 메달과 트로피를 가져와 내게 보여준다. 무엇이든 내기를 하면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강한 승부욕도 숨기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내 도움을 받으며 수학 학습지, 영어 쓰기, 국어 학습지, 일기 쓰기까지 각종 숙제를 해왔다. 독서를 통해 행동을 교정하고, 바른말 사용과 폭력을 쓰지 않고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끝없이 반복했다. 그 사이 아이는 성장했고,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배워갔다.


할 일을 미루지 않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독서노트에 그림으로 내용을 표현하고 말풍선을 달아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도 소질이 보였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그림은 늘 나를 놀라게 했다.


아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놀이 시간이다. 규칙을 어기거나 거친 말을 하면 놀아주지 않겠다는 말이 그에게는 가장 무서운 경고다.


그러던 어느 날, 형들의 장난과 부추김에 휘말려 친구와 싸움이 벌어졌다. 거친 말과 발차기가 이어졌고, 그동안 절제해오던 모든 행동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말을 해도 흥분한 그의 상태는 가라앉지 않았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폭풍이 지나간 뒤처럼 분위기가 가라앉고 평정심을 되찾았을 때, 나는 말했다.


“너에게 실망했다. 규칙을 지키지 못한 너의 행동을 생각해 봐.”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종종 나의 말에 이유를 달며, 반성 없는 비아냥으로 대신 받아친다. 그동안 화를 내지 않고 늘 아이들 편에 서 왔던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그들의 사고가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걸까. 불편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너희는 무섭게 화내고 혼내는 사람의 말은 듣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 거야?”


서운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어른의 큰 소리 한마디는 혼란한 아이들의 세계를 단번에 정리해 버린다. 한마디 변명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어쩌면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와 단단한 관계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말이 되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날의 여운 때문에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는 나를, 그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보드게임을 시작하기 전, 다시 한 번 규칙을 정했다. 지키지 않으면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행히 아이는 안정된 마음으로 규칙을 잘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다짐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린다.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비로소 통제가 이루어진다. 오늘 실패하더라도 내일이 있다. 그들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씩 더 자라나는 진행형의 아이들이다.


나는 그들의 성장통 앞에서, 오늘도 마음과 씨름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훈육보다 관계를, 통제보다 기다림을 선택하는 일.

내가 매일 연습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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