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자리에도 삶은 이어지고

by 자그노기

누구나 한 번쯤은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가는 사람 앞에서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을 잃은 그녀의 태도는 담담했다. 우리가 만난 지 3분의 2쯤 지났을 때, 그제야 그녀의 마음이 조금 열렸다. 1시간 10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곳은 시골 변두리쯤 되는 마을의 아파트였다. 예전에 논밭이었음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드문드문 들어선 건물과 넓은 벌판이 맞닿아 있는 풍경에서, 이곳 역시 개발의 옷을 입고 있다는 걸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겉모습은 도시화되어 가고 있었지만, 공기만큼은 여전히 시골의 맛을 품고 있었다. 나는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우리를 마중 나온 그녀는 집으로 안내했다. 남편이 없는 빈자리는 컸지만, 세 식구는 그 틈을 조금씩 메워가고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모두 성인이 되어 마주하니 처음엔 어색했지만, 태어나기 전부터 낳고 기르는 과정을 함께 지켜본 사이라 추억은 쉼 없이 쏟아졌다. 분위기는 어느새 한껏 달아올랐다.


말하는 사이, 우리가 사온 귤 한 박스가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이야기에 맞춰 껍질만 산처럼 쌓여 갔다.


조심스레 꺼낸 남편의 이야기에는 질병과 통증, 삶의 마지막 순간과 임종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돌봄과 간병을 함께 감당했던 그 시간의 무게가 말 사이사이에 묻어났다.

철부지였던 아이들이 자라, 아빠의 꺼져가는 생명을 1년 가까이 함께 지켜냈다는 이야기에 “대단한 자녀들이네”라는 말이 나왔지만, 속마음은 쉽게 따라가지 못했다. 그 고통을 고스란히 지켜본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절망을 남긴 건 아닐까.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이후 자녀들은 운동할 때를 제외하곤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했다. 둘은 사이가 좋아 친구처럼 지낸다. 가장으로 살아가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에, 세상으로 나가는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만의 세계에 머물며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딸은 학창 시절의 따돌림이 트라우마로 남아, 직장 생활조차 겁을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곳을 내려오는 동안, 내 마음은 계속 그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가장만을 의지하던 삶에서 이런 일을 겪었으니,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 고기를 구워 먹었다. 배가 찰 때까지 말없이 먹는 데만 집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었다. 아쉬움이 남았는지 집에 가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자고 했지만, 이미 어둠은 마을을 덮고 있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우리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차를 마시며 그녀는 그동안의 삶을, 왜 아들이 집에 머물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풀어놓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할부와 대출을 모두 갚았고, 지금은 살 만하다는 말이었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다던 그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스무 살 중반이었는데, 고인이 된 아빠를 꼭 빼닮아 있었다. 내 시선은 자꾸만 그에게로 향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자신의 분신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도 신비로운 일인지 새삼 느껴졌다.


책임은 두 배가 되고, 삶의 무게 또한 두 배가 되었을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삶 앞에 제대로 머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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