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톡, 톡.
우산 위로 작은 구슬 같은 빗방울이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먼지를 삼켜버린 축축한 도로 위를 달리며 묵직한 소리를 남겼다.
우산을 쓰고 걷는 이 길은 언제나 오만 가지 생각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저 소음으로 번지던 아이들의 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던 마음의 말로 다가온다.
내 하루 속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열린 귀, 그것은 자연이 내게 건네준 커다란 선물 같다.
그중에서도 유독 또렷이 남는 목소리가 있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데 공부하라며 다그치는 할머니가 밉다는 아이,
게임을 하고 싶은데 학습지를 풀어야 해서 싫다는 아이,
“귀찮아, 귀찮아.” 하고 투덜대는 작은 마음들.
아이들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의 어린 시절에 닿아 있었다.
언니들 틈에 둘러싸여 있던 나는, 그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인식했다.
아, 내가 이 집에 왔구나.
그것이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사실만 또렷이 남긴 채로.
생각은 끝없이 확장되었지만, 집이 가까워지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와 함께 어린 시절도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우산을 살짝 들어 올리자 가로등 불빛 아래 가랑비처럼 얇은 빗방울들이 훤히 보였다.
집에 도착해 우산을 털고, 생각도 함께 털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비는 그저 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닫혀 있던 내 귀를 조용히 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