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시집을 갔고, 나는 장모가 되었다.
‘장모’라는 말은 아직도 어색하다. 마치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몸에 맞지 않는다.
수많은 호칭 중 하나일 뿐인데,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너무 커서일까.
우리 아이들의 부모로 살아오다, 이제는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책임이자, 또 하나의 부담이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혹시 내가 상대를 지시하고 조정하려 들지는 않을지,
어른답게 굴지 못하면서 어른 행세를 하지는 않을지,
그런 걱정이 먼저 앞선다.
올해 서른이 된 딸은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엄마의 눈에는 아직 여리고, 살림도 서툴고, 배워야 할 게 많아 보인다.
직장만 다니던 딸이 이제는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가야 한다.
아마 우리 친정엄마가 나를 바라볼 때도 그랬을 것이다.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안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딸에게는 그 마음이 쏟아지는데
사위에게는 ‘어른답길 바라는 기대’가 먼저 앞선다.
사위는 알아서 잘해야 할 사람,
실수하면 실망하게 되는 사람.
돌이켜 보면,
내가 새댁이었을 때 시부모님들도
나에게는 “알아서 잘하는 며느리”를,
아들에게는 “아직 애니까 네가 챙겨야지”를 기대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의 딸처럼,
그때도 철부지 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부모님 눈에 얼마나 어설퍼 보였을지 짐작이 간다.
얼마 전, 출근하는 사위가
영화 티켓을 예매해 두었으니 딸과 함께 보라며 카톡을 보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처가에만 너무 신경 쓰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사위도 딸과 다르지 않은 입장일 텐데,
우리는 왜 사위에게만 더 단단해지는 걸까.
사위 역시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고,
그 집안의 막내둥이일 텐데.
그 생각이 들자
딸에게는 너그럽고, 사위에게는 엄격했던 내 속내가 보였다.
그제야 눈가가 뜨거워졌다.
내 안에 이런 마음이 숨어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마도
사위의 말과 행동,
조심스러운 태도와 배려가
내 마음의 단단한 문을 조금씩 느슨하게 당겨 놓았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는 건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겪어보고, 지켜보고, 부딪혀 보면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새 사람이 가족이 되는 일도 그렇다.
부딪히고, 조심하고, 애쓰면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과정일 것이다.
어른답게 산다는 건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내가 느낀 대로만 판단하지 않기,
내가 본 것만으로 오해하지 않기,
그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어른의 몫인지도 모른다.
사위에 대한 내 마음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열렸으면 좋겠다.
나를 바라보는 딸의 눈처럼,
사위를 바라보는 내 눈도
조금 더 부드러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