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살짝 기분 나쁠 뻔했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기분이 아주 상한 것도, 괜찮은 것도 아닐 때
딱 맞게 쓸 수 있는 말.
그 표현은 어느새 내 삶에도 스며들었다.
초저녁, 휴대전화가 울렸다.
“네, 어머님.”
“무슨 반찬을 그렇게 많이 보냈니?”
“저희가 반찬 만든 김에
어머님 댁이랑 ㅇㅇ 어머님 댁에 같이 보냈어요.
맛있게 드세요.”
어머님의 목소리는 조금 급했고,
그 안에는 뭔가를 다짐받으려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다음부터 반찬 하지 마라. ㅇㅇ집도 마찬가지야.
그 집은 부자고 아들도 있고 며느리도 있는데
왜 네가 하니?”
“ㅇㅇ어머님 어깨 다치셔서
요즘 음식 사 드신대요.”
“하지만 어머님은 거듭 말씀하셨다.
“하지 마라. 다음부터는.”
낮부터 반찬을 만들며 쌓였던 내 마음의 온도는
그 말들 사이에서 조금씩 식어갔다.
괜히 돌을 맞은 사람처럼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당신 생각대로 해라”는 어머님의 말과
“괜찮다”는 나의 말은
끝내 한곳에서 만나지 못했다.
“속상해 죽겠네. 제발 말 좀 들어라.”
그 말 속에는
걱정보다 강요에 가까운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나는 작게 “네…”라고 대답했고,
그 순간 마음은
체한 사람처럼 갑자기 답답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머님은 조용히 덧붙이셨다.
“너도 직장 다니느라 힘들잖아.”
그 한마디가
차갑게 떨어졌던 내 마음의 온도를
1도쯤 끌어올렸다.
아, 이 말이 하고 싶으셨던 거구나.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알았다.
괜히 감정이 앞서
나는 ‘네’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것을.
결론은 단순했는데,
나는 그 앞에서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아버렸다.
그래서 그날,
나는 살짝 기분 나쁠 뻔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왔다.
“어제 내가 한 말 신경 쓰지 마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좋은 마음에 하는 건데
내가 괜히 막는 것 같아서 신경 쓰인다.”
나는 말했다.
“아니에요, 어머님.
어제 전화 끊고 나서 제가 반성했어요.
어머님이 저 힘들까 봐 하신 말인데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할 걸 그랬어요.”
어머님의 목소리는
어제와는 전혀 달랐다.
조심스럽고, 미안한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경솔한 말은
경솔한 대답을 부른다.
충고와 명령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연세가 들어도 당당한 어머님에게서
그날 나는
서운함보다
조금의 귀여움을 보았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아주 조금,
여유가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