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에는 어린 내가 살아 있다.

by 자그노기

오랜만에 찾은 시골집.

무심히 뒷산을 올려다봤다. 밀림처럼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을 보니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은 언제 보아도 속이 뚫린 듯 맑고 단단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낙엽 한 장까지 쓸어 모아 불쏘시개로 쓰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이라는 굴레 속에서 청년처럼 자라나는 굵은 나무들마저 낫으로 가차 없이 베어 불아궁이에 넣어야 했다. 이유도 모른 채 희생되었을 작은 생명들의 비명은, 지금도 귓속 어딘가에서 이명처럼 울리는 것만 같다.


명절이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사과 하나 손에 들고 산에 올랐다. 자연을 즐길 줄도 몰랐던 우리는 민둥산이 된 산꼭대기로 모여들었다. 그곳은 우리들의 놀이터이자, 하루를 이어가기 위한 생명줄 같은 나무들이 있던 자리였다.


명절이라 산에 올랐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일조차 우리에겐 사치였다. 몸은 산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살림에 매여 있었다. 고작 사과 하나 나눠 먹고 내려오는 것이 전부였다.


내 집 드나들 듯 반질반질해진 산길은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날 만큼 좁았다. 길 옆으로 뻗은 작은 가지가 어깨를 밀치고, 다시 튕겨 내 뺨을 야무지게 때리고는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눈물이 찔끔 나서 꺾어버렸던 그 가지는, 살기 각박했던 시절의 대변인이었다.


지금은 난방기구가 잘 갖춰져 있어 요금만 지불하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 빽빽이 들어찬 산의 외모는 여전히 투박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온기를 떠올리면 이것이야말로 시간이 허락한 호강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속 곳곳에는 내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이 숨은 그림처럼 숨어, 지금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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