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손님들에게 맞는 TV 프로그램을 틀어주려 했는데, 아이들은 채널을 돌리다 이혼숙려 프로그램에 눈을 멈췄다. 표정은 뜻밖에 진지했다. 잘못한 남편의 행동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네 이런 프로그램 좋아하니?”
“네.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가 보는 채널이라 같이 보게 됐어요.”
순간 나는 당황했다. 초등학생들이 보기엔 부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박히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때 한 아이가 물었다.
“부부는 왜 싸워요?”
아마 부모의 다툼을 직접 본 아이일 것이다.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스스로에게도 변명처럼 들렸다.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무관심한 척했지만, 부모의 다툼에 대해 생각이 많은 얼굴들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물은 적이 있다. 부모가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게 어떠냐고. 대부분의 대답은 같았다.
“제일 괴로워요.”
“죽을 만큼 싫어요.”
항상 같은 결로 사납게 들리는 싸움 소리는 아이들의 가슴에 박혀 불안을 만든다.
한동안 매일 싸움 소리가 들리던 윗집 부부는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옆집 아주머니가 참다못해 항의한 뒤부터였다. 시집간 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욕설과 함께 물건이 던져지고 깨지는 소리가 매일 들려 불쾌감이 든다고 했다. 그 집은 불만 켜지면 초저녁부터 싸우고, 또 친구들을 불러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었다.
싸움 소리가 집 밖까지 새는 순간, 거기엔 이성보다 감정의 폭발이 있다. 이웃은 보이지 않는다. 배려는커녕 자기 정당성만 남는다. 그렇게 싸움은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된다.
나도 다르지 않다. 가끔 나도 모르게 가장 불친절한 말을 남편에게 던진다. 편하다는 이유로 거르지 않는 거친 말들. 때로는 상대가 긁히라고 의도적으로 센 말을 고르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하듯 대했다면 현모양처 소리쯤은 들을 텐데, 나는 굳이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한다.
곧 후회할 걸 알면서도 또 하고 만다. 머리로는 충분히 계산이 끝났는데, 오래 묵은 감정의 씨앗은 머리를 외면하고 입으로 먼저 흘러나온다. 그러고 나면 좋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등 뒤로 또 한 판을 버린다.
이게 부부일까
모든 부부가 싸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의 말과 태도는, 누구에게나 조심해야 할 얼굴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