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에 눈꽃이 피었다. 벌거숭이 나무가 안쓰러워 잠시 마음을 내어주었더니, 밤새 내린 눈이 마음의 빛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었다. 묵직하게 눌린 이파리 위에서 하얀 가루가 살살 털리며 가늘게 흩어진다.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시체 같은 그대여. 그 아름다운 자태가 나의 미간을 당기고, 입가마저 겸손하게 끌어올린다.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순간에서야 배운다.
마치 천적을 피해 몸을 위장한 대벌레들의 소굴처럼, 나무들은 등에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채 보란 듯이 춤을 춘다. 고개를 조금 숙여 내려다본 지면 위에서는, 엄살인 듯 몸을 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경비 아저씨의 근심 어린 얼굴이 보인다.
눈을 대하는 데에는 양면의 칼날이 있다.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가 하얀 눈꽃을 붙들고, 햇볕은 길가에 뿌려진 마그네슘과 줄다리기를 한다. 화려함 뒤에는 살을 에는 고통이 있고, 그것을 견뎌야만 봄을 맞을 수 있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그렇다. 고통의 순간은 순식간에 스며들었다가 사라지지만, 그것을 견디는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길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