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옷을 벗으면 드러나는 복근이 아버님의 자랑이었다.
사람들이 부러워했다는 그 복근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단지 당신의 입을 통해 수없이 들었을 뿐이다.
운동기구는 기본이고, 한 시간 거리는 거뜬히 걸었다. 여행을 즐겼고, 팔십 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몸을 단련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건강은 당신의 자존심이었고, 복근은 세월을 이겨낸 증표였다.
그런데 몇 해 전, 위암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 소식은 당신을 뿌리째 흔들었다.
챔피언 자리를 지키던 선수가 예고도 없이 KO패를 당한 것처럼, 믿기 힘든 순간이었다. 병실에서 “괜찮다”고 말하며 지은 어색한 웃음은, 오히려 괜찮지 않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강하다고 믿어왔던 사람의 눈빛에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읽었다.
식구들 역시 충격을 받았다. 늘 건강을 자랑하던 사람에게 암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낯설었다.
수술과 치료를 지나며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회복은 생각보다 빨랐지만, 시간은 예전처럼 당당하지 않았다. 아버님은 여전히 몸을 관리한다. 그러나 어느 날, 아들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10년만 젊었어도 못 할 게 없지.”
그 말 속에는 잃어버린 시간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에 대한 아쉬움이 스며 있었다. 늘어진 근육을 탓하면서도 기운만 나면 어디든 떠나는 사람. 예전에는 “지금 떠나도 미련 없다”고 말하던 분이, 이제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
아버님의 진짜 복근은 배 위에 있던 단단한 근육이 아니라, 생명을 끝까지 붙드는 마음의 힘이 아니었을까.
이것을 노장의 욕심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삶을 향한 가장 솔직한 사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