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완장

by 자그노기

훤칠한 키, 날렵한 몸, 짙은 쌍꺼풀에 부리부리한 눈.

그는 완장 아저씨였다.


그의 아내는 언어와 청각에 장애가 있었고, 아저씨 역시 말이 매끄럽지 않았다. 대화는 가능했지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면 더듬더듬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동공이 커지고 눈이 충혈되었다. 말보다 눈빛이 먼저 달려 나가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바닷가 지킴이 아저씨는 누가 맡긴 직책이었는지, 스스로 자처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는 늘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 장애인은 마치 죄인처럼 집 안에 숨어 살아야 했던 때였다. 가족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존재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장애 부부는 건강하고 예쁜 아들딸을 낳아 키웠다. 집안 어른들이 동네에서 영향력이 있던 덕분인지, 그들은 보호받으며 살 수 있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바다의 주인이었다.

봄, 여름, 가을에는 논밭을 일구고 겨울이면 김 양식에 바빴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굴과 바지락을 캤다. 집집마다 한 사람씩 나와 참여했다. 먹고도 남을 만큼 캐서 도시로 떠난 자식들을 위해 손질해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바다의 선물은 그렇게 자식 사랑으로 변했다.


섬마을에는 암묵적인 원칙이 있었다.

아무 때나 굴과 바지락을 캐면 안 된다는 것.

자연스레 바닥에 드러난 고동은 가져올 수 있어도, 굴과 바지락은 정해진 때가 아니면 손대지 않았다.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이라 누가 무엇을 하는지 금세 눈에 띄었다.


완장 아저씨는 집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보다가도 수상한 기척이 보이면 마음 급한 걸음으로 달려 나갔다.

“아저씨, 누구 잡으러 간다.”


어김없이 들려오던 말이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 마을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가 많았다. 친분이 있어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그때만큼은 그의 눈빛이 유난히 날카로웠다. 타협 없는 잣대를 든 심판자 같았다.


바닷가에 자주 나가던 나에게도 그는 늘 눈치 보이는 존재였다. 잘못한 게 없어도 괜히 허리를 곧추세우게 만드는 사람. 누구보다 따뜻했지만, 어린 내게는 단단히 굳어버린 얼굴로 남아 있다.


어느 날, 도시에서 내려온 자식에게 먹이겠다며 몰래 굴을 담던 아주머니의 통을 아저씨가 뒤엎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바닷가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치며 달려온 아저씨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의 엄격함 덕분에 굴과 바지락은 튼실하게 자랐다.

마을 사람들의 밥상이 풍성해졌다.

자식들이 내려오면 바리바리 싸들고 갈 것이 생겼으니, 엄마들의 마음도 함께 부풀었다. 바지락 한 봉지에는 말로 다 못 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 바다는 그렇게 엄마의 바다였다.


명절이 다가오니 바다와 완장 아저씨가 떠오른다.

이제 고향에는 부모도, 아저씨도 없다.


투명한 유리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가 지켜낸 바다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 완장처럼 무엇을 지키며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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