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묵자!”
설날, 시댁 식구들과 식사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시작되자 숟가락과 젓가락만 오르락내리락할 뿐, 누구도 침묵에 손대지 않았다.
뷔페식당의 설날은 가족 단위 손님들로 북적였다. 대가족, 직계가족, 홀로 온 여성까지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더미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먹는 모습이 복스러웠다. 그러나 우리 식탁 위에는 음식보다 먼저 어색한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시댁 모임이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 원칙처럼 굳어 있었다.
시댁 짬밥을 먹을 만큼 먹은 내가 먼저 정적을 깼다.
물건을 버리지 못해 정리가 안 되는 남편과 아들이 부딪혀 휴전 상태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의 억지 미소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여덟 명 중 세 명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소리마저 귓속말처럼 들렸다. 아들의 볼이 빨갛게 굳어 있었다.
가족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닮은 구석이 배어 있다.
아들에게 아빠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 내 입이 열렸다.
선포하듯 던진 한마디.
물건을 버리지 못해 정리가 안 된다고 말했더니 어머님은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맹세하듯 말했다.
“어머, 내가 그러는데.”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는 어머님이 새삼 크게 보였다.
이 말을 시작으로 식탁 위에 쌓여 있던 것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왔다. 아버님과 아주버님은 정리의 달인이지만 청소는 하지 않고, 어머님과 형수님은 물건을 못 버리지만 청소는 잘한다며 서로를 향한 고발이 이어졌다.
남에게는 세상 좋은 사람이면서 가족에게는 고집이 세고 타협이 어려운 것, 그것이 이 집 남자들의 특징이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점에서는 단연 아버님이 왕이었다. 어머님은 그동안 쌓아둔 감정이 실타래처럼 풀어지는 듯 지적할 때마다 아버님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어머님만 바라보고 눈빛을 쏘아대는 아버님의 모습은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았다.
집안에서 가장 신사라는 아주버님이 “아우에게 그러면 안 된다”며 자리를 비우자 형수님의 분노가 시작됐다.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음식을 가득 담아 돌아온 아주버님의 어색한 웃음에서 인간적인 체온이 느껴졌다.
더 나아가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마지막을 정리했다. 오늘의 솔직한 대화는 서로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개선점을 찾기 위해서라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지 않기.
아무리 유전자라도 작은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내면까지 안다고 단정하지 않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유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