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의 제국

by 자그노기

내 이름은 수컷 고양이 제로다.

그리고 나에게는 피부친 누나, 콜라가 있다.


엄마 집사의 요즘 고민은 털이다.


내 털은 집안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

발이 닿는 곳마다 내 영역이니 어쩔 수 없다.


귀요미의 끝판왕인 우리 뒤에는

엄마 집사의 깊은 한숨이 따라온다.

그 한숨 속에서 우리의 털은 단단히 한몫한다.


콜라와 내가 먹었던 털을 다시 뱉어낼 때마다

엄마 집사는 말한다.


“우리 뱃속에도 털이 한 움큼 들어가 있을 거야.”


나의 자랑은 우아한 짧은 쥐색 털이다.

동글동글 통통한 몸에 잘 어울린다.


문제는,

어찌나 털이 많이 빠지는지

나도 가끔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청소기 소리는

내 털을 잡아먹는 괴물 같다.

처음에는 무서워 도망갔지만

지금도 그 소리는 여전히 기분이 나쁘다.


햇빛이 창문을 통과해 방 안으로 들어오면

털들이 공기 사이에 떠다닌다.

마치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

서글픈 춤을 추는 것 같다.


이윽고 돌돌이 테이프가

내 몸에 붙어 있는 죽은 털을 살짝 문지르고 간다.

엄마 집사의 한숨도

그 털들과 함께 떨어져 나간다.


옷에 붙은 털을 털어내기 위해

내 방에 이상한 물건 하나가 들어왔다.


‘건조기’라는 녀석이다.


처음에는 웬 괴물인가 싶어 경계했지만

지금은 털이 걸러지는 그 위에

당당히 올라가 서 있다.


오늘도 집을 나서는 집사들의 옷 속에는

내 자랑스러운 털이 구석구석 박혀 있을 것이다


내 체취와 함께.


나는 안다.

깜찍하고 귀여운 나의 매력 뒤에는

집사들이 감당해야 할

털과의 치열한 싸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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