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일

by 자그노기

아버지의 기일, 우리는 각자의 삶을 멈추고 한자리에 모였다.


조카 손자는 숨이 가빠 가슴을 부여잡고도 멈출 줄 몰랐다. 붉게 달아오른 볼은 승부욕으로 타올랐고, 어른들의 염려로 축구가 중단되었음에도 한 번 붙은 열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의 축구 경기는 그곳의 공기만큼이나 맑았고, 무엇보다 진심이었다.


매일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 막내 할머니는 어느새 그들의 편이 되어 수비와 공격을 오갔다. 순식간에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고, 햇볕에 그을려 잿빛 피부가 된 깊은 주름의 큰할아버지도 다른 이들과 함께 무겁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도시에서 자란 조카 손자들은 말로만 듣던 ‘일가친척이 많다’는 사실이 낯설기보다 오히려 든든하게 느껴졌던 건 아닐까.

“방금 우리 할머니 보고 왔는데, 또 할머니가 있어요.”

닮은 분위기의 할머니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아이는 신기한 듯 웃었다.


온실 속 아이들처럼 곱게만 자란 그들 속에도, 아이 아버지의 뜨거운 기질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좋다며 따라 하던 아이가 외친다.

“와메!”

대놓고 흐뭇해하는 그 표정이 귀여움의 절정이다.


무슨 말을 해도 그대로 믿는 그들의 진지함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 넋을 빼앗긴 듯 한동안 시선을 붙잡았던 그 고급스러운 웃음 속에, 나도 함께 서 있었다.


부모님이 떠난 자리.

유전자는 자녀들에게 나뉘어 흘러가고, 그렇게 다시 모였을 때 우리는 잠시 평안을 얻는다. 그러나 그 단면은 여전히 우리에게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오늘도 나는 가족의 평화를 위해, 모난 마음 하나를 조용히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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