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뒤 아침의 소리

by 자그노기

아침, 손님처럼 살짝 다녀간 장맛비. 초록은 하늘을 향해 무섭게 뻗어 가는데, 밤새 쏟아 부은 비는 그 기세를 잠시 꺾어 가지를 푹 눌러 앉힌다. 그래서일까, 하늘의 안색은 하루 종일 우중충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낮게 드리운 구름들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스며든다.


창밖 살구나무에 매달린 열매들은 푸른 잎사귀에 가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더니만, 비에 젖어 축 늘어진 잎들 사이로 하나둘 얼굴을 드러낸다. 이제 막 노란 기운을 띠기 시작한 살구들이 푸른 가지를 배경 삼아 눈에 들어온다.


제로는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새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는,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고개를 꼿꼿이 세운다. 마치 누가 말린 것도 아닌데 근엄하게 자세를 고쳐 앉은 모습. 그 자태가 어쩐지 졸음을 참는 옛 장수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한 모금 입가에 고인다.


그 곁에서 콜라는 창틀 위에 몸을 말고 앉아 발을 핥고 얼굴을 닦는다. 고양이 세수를 부지런히 반복하는 모습이 익숙하고도 평화롭다.

비 온 아침, 사람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생명들이 있다.


이제 막 출근 준비를 하며 졸린 눈을 비비고 나온 아들. 밤늦게까지 게임을 했는지 피곤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엉겨 있다. 그런 모습마저 어쩐지 정겹다.

조용한 아침,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아버지의 큼직한 기침 소리가 들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새의 지저귐과 날갯짓 소리.

그 요란한 소리에, 졸던 제로가 번쩍 눈을 뜬다. 그 눈빛마저도 잠결을 닮아 부드럽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잎들 사이로 햇살이 어렴풋이 번진다. 하루가 그렇게, 조용히 열린다.

고요한 아침의 틈을 지나, 오늘도 살아 있는 존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견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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