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딸과 함께 서울 언니네 집을 찾았다. 지척에 두고도 마음만은 수없이 다녀갔을 뿐, 발길은 오랜만이었다. 결혼 전까지 살던 고향 같은 그곳은 많이 달라져, 이제는 이방인의 도시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언니 부부는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정서적 부모’로 살아주었다. 나는 눈치 없는 철부지였고, 그 사실이 지금은 부끄럽게만 여겨진다. 언니 가족과 함께 살면서야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다. ‘착하다, 얌전하다’는 말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정작 기본적인 예의조차 부족했던 나였다. 언니 부부의 꾸지람 하나조차 나에겐 배움이 되었고, 지금도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이제 나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딸의 청첩장을 들고 언니네를 찾아왔다. 언니 부부는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만나지 못한 시간만큼 이야기꽃이 터져 나왔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멈출 줄 몰랐다. 그러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손주들이 등장하자 이야기는 멈추었다. 순간 언니 부부의 얼굴이 화사한 꽃처럼 환히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손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자 낯설음에 수줍은 긴장감이 얼굴에 번졌다. 평소 당당하던 모습과는 달라 언니 부부도 놀라는 눈치였다. 밖에서 만나는 어르신들 이야기에 늘 손주 자랑이 빠지지 않듯, 언니는 우리에게도 그 재롱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할머니 뒤에 숨어 눈치만 살폈다. 모임만 있으면 먼저 나서 춤을 추곤 했다는데, 그 활달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큰 손주는 의젓했고, 막내는 어떤 말에도 웃음을 보였다. 어금니까지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두 볼의 보조개와 어우러져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웃음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내 얼굴에도, 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있었다.
언니 부부의 행복한 웃음을 보며 생각했다. 가정을 든든히 지켜준 울타리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이 아닐까. 낳아준 부모가 존재만으로 든든한 기둥이라면, 둘째 언니는 삶의 방향을 보여주며 건강한 가정을 꿈꾸게 해준 또 하나의 부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