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노모

by 자그노기

늦은 퇴근길, 굵은 빗방울이 이마를 차갑게 두드렸다. 바쁜 걸음이 비에 쫓기듯 빨라지던 순간, 눈길이 작은 골목 어귀에 머물렀다. 낡은 빌라 사이, 어르신용 유모차에 기대 앉은 노모가 보였다. 묵직한 모자를 눌러쓴 채, 쓸쓸히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그 칙칙한 골목은 마치 노모의 사정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어르신, 비 오는데 집으로 들어가세요.”

그렇게 지나치려는 나를 노모의 한마디가 붙잡았다.

“아들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우리 집에 가서 아들 올 때까지 같이 있어주면 안 될까요?”


낯선 이에게 건넨 짧은 부탁이 내 마음속 깊이 눌러두었던 감정을 흔들어 깨웠다.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남편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나는 얼어붙은 듯한 침묵 속에 흔들렸다. 멀어질수록 울분과 그리움이 밀려와 가슴을 파고들었다. 마침내 눈물이 비보다 더 서럽게 흘러내렸다.

“차 돌려요.”

뜻밖의 내 말에 남편이 놀란 눈길을 보냈다.

“우리 엄마 같아서요.”

그 순간, 오래 꾹꾹 눌러왔던 막내딸의 그리움이 터져 나왔다.


급히 편의점에 들러 빵과 우유, 과일을 챙겨 골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노모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빗속에서 홀로 남은 골목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듯, 나는 유모차를 찾아 골목을 헤맸다. 몇몇 집을 두드린 끝에야 알게 되었다. 노모는 치매기가 있는 노인이었고, 늙은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인기척 없는 문 앞에 조심스레 빵과 과일을 놓아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격렬하던 감정은 서서히 가라앉고, 알 수 없는 평온이 찾아왔다. 문득 깨달았다. 우리 곁에는 노모처럼 외로움을 견디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것을. 그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함께 있어 줄 말벗, 잠시라도 곁을 지켜줄 누군가일 뿐이다.


오늘도 수많은 노모들은 지친 몸으로, 보고 싶은 이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것은 어쩌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우리의 내일이기에, 나는 그들의 외로움을 내 마음에 오래 품어본다.

작가의 이전글파도치는 날 배 띄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