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겉절이, 그 비밀

by 자그노기

“막내야, 맛 좀 봐라.”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어느새 저녁밥상 준비가 한창이다.


김치의 대표격은 단연 배추김치다. 뭉근하게 스며들어 감칠맛을 책임지는 일등공신이 젓갈이라면, 대충 흩뿌려도 군침을 자극하는 건 단연 엄마의 손맛이다.


해질녘이면 엄마의 손길은 더 바빠진다. 마당에 큰 학독을 놓고 불린 고추를 갈아 넣는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의 비밀 병기, 젓갈이 등장한다. 된장·간장·고추장독과 떨어져 외로이 있던 젓갈 항아리는 평소엔 존재감이 없었지만, 겉절이를 담을 때만큼은 주인공이 된다. 청산도 외가에서 가져온 밴댕이젓은 짭조름하고도 비릿한 향으로 겉절이에 깊이를 더했다.


빨갛게 빛나는 고춧가루, 감칠맛 나는 젓갈, 알싸한 마늘, 은은한 생강, 찰기 있는 식은밥, 고소한 깨, 단맛을 더하는 설탕, 거기에 잘게 썬 쪽파와 배추까지. 저마다 혼자일 땐 빛을 내지 못하지만, 한데 어우러지면 군침 도는 향을 퍼뜨리며 밥을 부른다.


엄마의 손이 고춧가루물에 물들어 갈 즈음, 나의 배꼽시계도 꼬르륵 울린다. “막내야, 맛 좀 봐라.” 숟가락 끝에 올린 겉절이를 맛보는 순간, 감히 평가를 내릴 수 없는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매운기가 올라오면 얼른 식은밥을 퍼 와 엄마 옆에 바짝 앉는다. 밥이 차는 줄도 모르고 자꾸만 먹게 되는 맛, 바로 엄마의 겉절이다.


그 중심에는 역시 젓갈이 있었다.

엄마의 손맛을 흉내 내 보지만, 어림없다. 겉절이는 버무린 즉시 먹을 때 가장 맛있다.


이제 엄마의 손맛은 먼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때의 장소와 냄새와 맛은 여전히 지금 내 안에 선명히 남아 있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겉절이를 담는 날, 늘 곁에는 아들이 앉아 있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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