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사계절의 바통을 이어받아 끝없이 달리는 듯하다. 계절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묘한 조화 속에서 선은 서서히 무너진다. 긴 여름의 터널을 지나 이제야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러나 여름이 아직 기웃거릴까 두려워 반소매 차림을 고집한다. 그 순간 소름처럼 돋아오르는 쌀갓의 돌기가, 이젠 피부를 덮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여름은 끝까지 열기를 끌어올리며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무지막지한 태양은 이토록 화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에어컨을 끄지 않고, 결국 냉방과 열기가 줄다리기를 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가 밖으로 뿜어내는 뜨거운 기운을 보태면, 양심 한쪽이 어쩐지 면목없음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가을 문턱에서는 쉽게 웃을 수 없다. 얇은 겉옷 하나 걸치며, 뜨겁지만 동시에 따뜻했던 여름의 품을 아쉬워한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긴 터널을 지나고 나니, 그 고단함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