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의 아침

행복을 배달합니다.

by 자그노기

누군가를 생각하며 김치 냉장고를 열었다. 노란빛 묵은지를 꺼내 양념을 훌훌 털어내고, 고소한 들기름을 아낌없이 두른다. 팬 위에서 묵은지가 부드럽게 익어가는 소리, 그리고 곧이어 퍼져 나오는 향기. 축 처진 날씨를 단번에 깨우는 냄새가 코끝에 닿아 집 안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


습도의 기운이 공기를 눌러앉히니 아침은 겸손히 고개를 숙인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는 살구나무의 가느다란 떨림, 아주 가끔씩만 보이는 미세한 움직임이 오늘의 고요를 드러낸다. 불안하리만큼 잠잠한 이유는 어쩌면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묵은지 익어가는 소리에 묻혀버렸기 때문일까.


잠시 전까지만 해도 날뛰던 고양이들마저 냄새에 취한 듯 차분히 앉아 나를 바라본다. 이 음식 좋아할 사람을 떠올리며 꺼낸 묵은지였다. ‘이걸 먹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익어갈수록 풍겨 나오는 냄새는, 그 맛을 본 뒤에도 한동안 코끝에 은은히 남아 있으리라. 나의 행복을 바란다면, 소소한 일이라도 누군가를 떠올리며 행복을 먼저 배달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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