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와 햇님의 대화

by 자그노기

살구나무야, 빨간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볼래?”

햇님이 물었다.


“아이, 자신 없어.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살구나무는 주저했다. 빼빼 마른 몸에 3층 높이만큼 큰 키, 제 모습이 볼품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겨울이 오면 보일러 매연에 꺾일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햇님의 설득에 못 이겨 살구나무는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너는 가만히 있으면 돼. 바람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

햇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아침 내내 새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던 살구나무는, 이번만큼은 새들 말고 더 많은 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밝은 조명을 줄게. 이제 멋지게 그려봐.”

햇님의 빛이 붉은 벽돌 위로 비치자, 커다란 살구나무는 검은색 그림자를 드리우며 첫 그림을 완성했다.


“이야, 정말 멋진걸? 잎사귀들이 쉴새 없이 반짝이며 움직이네.”

햇님의 칭찬에 살구나무는 웃음을 머금고, 더 빛나듯 흔들렸다. 그 순간 창가에 앉아 있던 고양이의 시선도 반짝이는 그림에 머물렀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살구나무야, 이제 나는 너를 더 도와줄 수 없어. 곧 위로 올라가야 해.”

햇님이 높이 떠오르자, 그림자는 서서히 아래로 흘러내리며 지워졌다.


햇님은 하늘 위로 더 높이 올라가 버렸다. 살구나무는 조용히, 겸손히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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