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마음으로

by 자그노기

다섯째 언니는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늘 효도하며 살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다른 형제들이 부모님을 돌보는 동안 언니는 사정상 신경 쓰지 못했고, 그 마음의 빚을 오래 지고 있었다.


팬데믹으로 요양병원 면회가 제한되던 시절, 간혹 허용된 시간에 둘째 언니 가족과 함께 면회를 갔다. 약속된 순간, 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나오셨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아버지를 향했다. 뒤이어 중환자였던 엄마가 침대에 실려 나왔다. 초점 흐린 눈빛, 낯설고 늘어진 모습은 내 마음을 덮치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유리벽 너머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손을 잡을 수도, 말을 전할 수도 없었다. 소리까지 차단된 채,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엄마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케이크를 사 오겠다”고 말해놓고 그 일을 잊고 말았다. 우리를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은 이별을 예견한 듯 낯설게만 다가왔다.


엄마는 오래 앓으셨기에,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몰랐다. 위독하다가 회복되시는 경우가 많았기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날,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엄마의 임종이 한 시간 남았다는 소식이었다.


안 돼, 엄마… 기다려 줘.”

나는 온몸의 힘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의왕에서 파주까지 택시를 타고 달리며 식구들에게 임박한 소식을 알렸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길 간절히 바랐다.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담당 의사와 연결되었고, 영상통화로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산소호흡기를 단 엄마는 이미 호흡이 멈춘 상태였다.


그 모습을 가족 단톡방에 올리고, 우리는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독한 약에 지쳐, 더는 버틸 힘조차 없으셨던 걸까. 장례가 끝난 뒤 언니들은 나를 다독이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특히 다섯째 언니는 죄책감이 컸다. 엄마를 돌보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내 카톡에 글을 남겼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동생이 다 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앞으로 엄마노릇 해볼게.”


그 말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가장 적절한 말은, 때로 엄청난 힘이 되어 삶을 붙잡아 준다는 것을 그날 깊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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