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수확 후 마당에 널어놓은 깨와 닮았다. 털어도 끝이 없고, 다 털어내지 못한 깨는 불쏘시개로 들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절규하며 사라진다. 그 모습은 묻혀간 말이 내는 마지막 신호음 같았다.
어릴 적 깨 수확을 돕던 기억이 있다. 낫으로 베어 묶은 깨단을 마당에 세워두면, 작은 깨주머니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가느다란 막대로 살살 두드리면 알갱이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러나 마음이 급했던 나는 종종 세게 두드려버리곤 했다. 마치 깨에게 보복이라도 하듯. 그렇게 수차례 털어내고도 바닥에는 여전히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 까불이로 쭉정이를 걸러내고, 알찬 깨만 골라내어 볶아내면 톡톡 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이 집 안 가득 퍼졌다. 결국 방앗간으로 보내진 깨는 참기름이 되어 온갖 음식의 맛을 살려주었다. 작은 알맹이가 모여 고소한 기름으로 다시 태어나듯, 말도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람의 마음에 스며든다.
그러나 모든 말이 그렇게 빛을 보지는 못한다. 대화 속에는 묻혀가는 말들이 있다. 용기를 내어 꺼낸 말이지만, 더 센 목소리에 눌려 자취를 감추고 만다. 때로는 생각 없는 사람처럼 오해받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내 내뱉지 못한 채 삼켜버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불편해졌다. 어쩌면 내 모습 같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묻혀가는 말들을 끝까지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말이야말로 누군가의 귀에 닿을 때 비로소 제 향기를 내뿜지 않을까
깨가 털리고, 걸러지고, 볶여서 고소한 참기름이 되듯, 말도 귀 기울여 들어줄 때 힘을 가진다. 묻혀간 말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언젠가는 누구의 마음속에서 고소하게 퍼져나가리라는 믿음을 남기며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