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감나무

by 자그노기

추석에 어머님 댁을 찾았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커다란 감나무였다.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걸 보니, 머지않아 감을 딸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마당 귀퉁이에 선 감나무는 원래 이 집의 옛 주인이 심은 것이었다. 이사를 가며 두고 간 나무는, 그때부터 어머님의 몫이 되었다. 어머님은 해마다 거름을 주고, 낙엽을 쓸며, 한 그루 나무에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잎이 하수도 구멍을 막을 때마다 아랫집 아주머니와 마찰이 생겼고, 급기야 홧김에 감나무가 죽으라고 굵은 소금을 뿌려놓은 일도 있었다. 그 일을 속상해하던 어머님의 얼굴을 보며, 나는 감나무 한 그루를 사이에 두고도 세상사에 여러 마음이 얽히는구나 생각했다.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어머님은 감이 다 익기도 전에 아들을 불러 감을 따게 하셨다. 주인 없는 줄 알고 따가는 이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감 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익은 감이 상하지 않게 따려면 요령이 필요했지만, 처음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해마다 감을 따다 보니 손끝에 감 잡는 감각이 생겼고, 지금까지 들인 장비값만 해도 감을 사먹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수확이 끝나면 다시 시작이다. 떨어진 잎을 쓸고, 가지를 자르고, 정리할 일이 끝이 없었다. 몇 해가 흐르자 어머님도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으셨다. 이제는 이웃이나 구경 오는 사람들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신다.


어머님의 손길을 받은 감나무는 해마다 더 고운 빛으로 익는다. 홍시로 변한 그 달큰한 맛은, 정성의 세월이 더해진 깊은 맛이다.


마당 한켠, 제 몸을 곧게 세운 감나무를 바라보니 벌써부터 입안에 단맛이 감돈다.

주인이 떠나 천덕꾸러기처럼 남겨졌던 감나무는, 어머님을 만나 새로운 생을 얻었다.

도시의 공기 속에서도 시골의 마음을 닮은 그 나무는, 아마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참 좋은 주인을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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