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장에서 손주가 내리는 순간, 할머니는 장난스럽게 몸을 숨겼다.
집 안에 들어온 손주는 구석구석을 살피며 외쳤다.
“할머니, 어디 있어요?”
잠시 후, 커튼 뒤에서 나온 할머니가 웃으며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
손주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할머니 향기가 났어요.”
그 이야기를 들려주던 지인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자신을 살아 있게 했는지를 고백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손녀가 “할머니 냄새나요.”라고 말한 순간,
그 말 한 줄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고 했다.
그날 이후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씻고, 향수를 짙게 뿌리는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에게는 향기가 사랑의 기억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세월의 상처가 되기도 한다.
지인은 평생을 사업에 매달려 살아온 일벌레였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 탓에 오해도 받았지만,
가족에게만큼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직장에 다니는 딸을 대신해,
손주가 태어난 날부터 어린이집, 하원, 저녁 돌봄까지 도맡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된 딸의 마음을 생각하면
한숨 대신 미소가 먼저 나왔다.
“일하는 사람이 아이까지 돌보는 게 말이 되냐”는
주변의 말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입장이 되면 어쩔 수 없다.”
그게 그의 대답이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손주는
할머니가 가르쳐온 방식대로 자랐다.
원칙을 지키고, 예의 바르고, 감정이 또렷한 아이.
할머니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 부르며
늘 예쁜 말을 골라 웃음을 선물한다.
지인의 허리와 다리는 세월의 흔적처럼 아프지만,
“할머니 향기가 났어요”라는 그 말만 떠올리면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번진다.
누군가 자신을 향기로 기억한다는 건
인생의 가장 따뜻한 위로가 아닐까.
요즘은 조부모가 손주를 키우는 일이 흔하다.
“손주 낳으면 결국 보게 돼.”
지인은 내게 그렇게 말한다.
그 말 속에는 이미 다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사랑의 피로와 기쁨이 섞여 있다.
나는 아직 그 마음을 다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그 향기를 이해하게 될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