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마음

by 자그노기

뾰족한 건물 사이를 벗어나자 비로소 넓게 펼쳐진 하늘이 도화지처럼 펼쳐지고, 그 위엔 누군가 조각그림을 그려 놓은 듯하다. 바람은 구름을 이리저리 끌어다 놓으며 분주히 배치하느라 손놀림이 애사롭다.


나는 바쁜 일상 속에서 늘 땅만 보고 살았다. 제각기 이름을 내걸고 서 있는 아파트 숲은 위압적으로 나를 누르며, 나의 기를 꺾곤 했다. 그런 나를 광활한 하늘의 화실로 데려다 준 건 다름 아닌 우리 자동차였다. 오랜만에 올려다본 하늘, 신의 손놀림은 그저 경이롭다. 그림에 빨려든 내 시선은 감탄의 찰칵 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땡볕에 메마른 땅은 목말라 있고,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숨어 버렸다. 오직 들판의 곡식들만이 몸살을 앓으며 버티고 있다. 조각구름은 잠시 땡볕을 가려 주었고, 거대한 먹구름은 그늘이 되어 숨통을 틔워 주었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햇님은 겹겹의 장막을 뚫고 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흰빛과 회색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답고 깊은 풍경을 빚어내다니—나는 압도된 채 입을 닫고 마음을 열었다.


내 마음에도 가끔 먹구름이 낀다. 누군가와 조화를 이루려 할 때, 알 수 없이 먹구름이 스며들곤 한다. 하얀 도화지 위에 마음의 그림을 그리던 중에도 어김없이 스멀스멀 파고든다. 먹구름이 요동치면, 함께 살아가는 내 안의 것들이 긴장하며 몸을 웅크린다. 그런 마음이라면 하늘을 볼 수 없다.


나는 하늘을 보며, 나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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